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12일 밤에 일어난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서울 한남동 일대를 울린 총소리에 주민들이 불안에 떨던 그날, 김 감독은 그곳에 있었다. 군인들이 길을 통제하고, 길가에는 장갑차가 지나갔다. 군인이 주민들을 통제하는 사이에도 총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당시 열아홉 고등학생이던 김 감독은 큰일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뒤에야 그날 전두환과 노태우가 참모총장을 납치하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는 게 알려졌다.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이 들려준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다.
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서울의 봄’은 그가 실제로 겪은 그날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시나리오 초고는 역사 정황 묘사가 주를 이뤘다. “열심히 찍으면 반란군의 승리 기록에 당위성을 줄 것 같아 걱정”했던 감독은 연출 제안을 고사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를 저지른 그들에게 끝까지 맞섰던 정의로운 이들을 조명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반란군이 승리하기 위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그들을 막기 위해 애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다루고 싶었어요. 뻔한 결말이 있는 짧은 사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군부 세력은 그날 밤 9시간 동안 많은 일을 벌였어요. 탐욕과 명분의 싸움이었죠. 대세추종주의에 의해 그들은 점점 세력을 불렸어요. 반면 명분을 지킨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어요. 욕망덩어리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과정을 상상해 내용에 살을 더욱 붙였어요. 관객들을 설득하고 싶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대단한 게 아니라, 침 질질 흘리는 늑대 같은 사람들이라고요.”
감독은 역사의 빈틈을 기록에 기반을 둔 상상으로 채웠다. 사실 묘사보다 인간 군상이 벌이는 욕망의 드라마로 방향을 틀고자 한 의도다. 실존인물들의 이름도 조금씩 바꿨다.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포기하는 대신 창작자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역사와 완전히 선을 긋진 않는다. ‘서울의 봄’은 극 말미 12·12 군사반란 주동자들의 단체사진을 재현하며 다시 역사를 진하게 비춘다. 출발점과 이야기의 토대를 확실히 보여주며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감독은 “그들에겐 자랑스러운 기억이겠지만, 적어도 ‘서울의 봄’에서는 역사의 패배자로 보이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봄’은 상영시간 내내 압도적인 몰입감을 자랑한다. 굶주린 늑대들이 보이는 야욕을 보다 보면 상영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베테랑 배우들도 시사 후 ‘과몰입’을 호소했을 정도다. 극 중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광과 이를 막으려는 이태신을 각각 연기한 황정민과 정우성은 시사회 당일 영화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도 평정심을 찾지 못했단다.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연출한 덕이다. 그 덕일까. ‘서울의 봄’은 개봉 전부터 올해의 영화라는 찬사를 얻고 있다. 김 감독은 “옛날일이어서 젊은 관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면서도 “다행히도 평이 좋으니 많은 관객분들에게 볼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