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무빙’, 넷플릭스 ‘마스크걸’, 웨이브 ‘약한 영웅 클래스1’…. 웹툰을 영상으로 옮겨 호응을 얻은 드라마다. 2000년대 중반 포털 사이트와 함께 성장한 K웹툰은 미래 한류 콘텐츠로 꼽힌다. 강풀 등 인기 웹툰 작가들은 아예 영상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을 도맡으며 크리에이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K웹툰이 K컬처 ‘노다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한국의 만화 거장 윤태호 작가는 영상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K웹툰의 경쟁력을 ‘압도적인 수’와 ‘독자 친화적 성격’에서 찾았다.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독자들과 만난 윤 작가는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봐도 일주일에 1500종 가까운 신작이 노출된다. 한 달에 300~400종가량 볼 수 있는 출판 만화와 비교해 많은 수”라고 짚었다. 독자들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반영할 수 있는 환경도 K웹툰의 성장을 도왔다고 봤다. “영상화는 독자 호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독자와 밀접한 매체로는 웹툰이 절대적”이라는 게 윤 작가 분석이다.
웹툰이 처음 영상물로 옮겨졌던 200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관객과 시청자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각색한 영화 ‘아파트’(감독 안병기), ‘바보’(감독 김정권), ‘순정만화’(감독 류장하)는 모두 100만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반전이 시작된 건 2010년대 중반부터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가 7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고, 이듬해 방영한 tvN 드라마 ‘미생’도 8%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최근엔 플랫폼 사업자도 웹툰 IP(지식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디즈니+는 강풀 작가와 퍼스트 룩 계약(작품 콘셉트·시놉시스·트리트먼트·각본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계약)을 맺었다. 강풀 작가의 초능력자 세계관을 드라마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다.
웹툰 작가가 영상화 제작에 적극 참여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장기 연재되는 웹툰을 영상 문법에 맞춰 각색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정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강풀 작가는 “분량 한계로 웹툰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드라마에 덧대고, 웹툰보다 확장한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드라마 ‘무빙’ 대본을 직접 써 호평받았다. 김풍 작가는 웹툰 ‘찌질의 역사’의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촬영을 마치고 공개할 플랫폼을 논의 중이다. 윤 작가도 자신의 히트작 ‘이끼’ 영화화를 제안했던 제작자와 함께 이 작품을 드라마로 옮기는 작업에 한창이다.
윤 작가는 웹툰 각색을 넘어 영상화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쓸 의향도 있다. “하드보일드 장르를 좋아해 그쪽으로 몇 개 생각 중”이라는 전언이다. 장기 연재되는 웹툰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이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웹툰을 거치지 않고 영상화에 돌입하면 이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김풍 작가는 “영상으로 옮기기 좋은데 웹툰에는 맞지 않는 아이디어가 있다. 장기 연재가 대부분인 웹툰과 달리 영화는 호흡이 짧아 (두 장르가)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이제 웹툰 작가보다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이 더 쓰일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