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청춘스타 박서준과 한소희가 만났다. 제작비로 수백억원을 들였다. 한국형 크리처(괴수)물의 성공 가능성도 이미 확인했다. 넷플릭스 ‘경성크리처’가 연말 기대작으로 꼽힌 이유는 차고 넘친다. 22일 베일을 벗은 ‘경성크리처’는 크리처물 외피를 두른 시대극에 가깝다. 광복 직전 경성을 배경으로 식민지배의 야만을 들춘다. 조선 땅에 좀비를 풀어 비극적 서스펜스를 만든 넷플릭스 효자드라마 ‘킹덤’과 설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재미를 따라잡진 못한다. 시대극으로는 참신함이 떨어지고 장르물로는 타격감이 약하다. 군살이 많아 ‘분량 감량’이 필요하다.
주인공 장태상(박서준)은 경성 제일의 자산가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도 자수성가했다. 이런 그에게 실종된 일본 경찰의 애첩 명자(지우)를 찾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태상은 토두꾼 부녀 윤채옥(한소희)·윤중원(조한철)와 손을 잡고 옹성병원에 잠입한다. 일본군이 생체실험을 벌이는 곳이다. 세 사람은 병원에서 ‘마루타’(생체 실험 대상)가 된 조선인들을 발견하고 탈출을 돕는다. 작품은 화려한 경성과 처절한 조선인의 삶을 교차하며 이 여정을 보여준다. “살아남는 것에 진심”이던 태상이 이타적인 인물로 탈바꿈하는 과정도 드러난다. 드라마 키워드인 ‘경계’를 보여주는 장치지만 신선함은 부족하다. 영화 ‘모던보이’(감독 정지우)나 KBS2 ‘경성스캔들’ 등 기존 작품이 떠오른다.
또 다른 주인공은 괴수다. ‘경성크리처’는 괴수의 기원을 일본의 생체실험에서 찾는다. 2차 세계대전에서 밀리던 일본이 인간을 개조해 무기로 삼으려다 괴수를 탄생시켰다는 가설이다. 식민 피해자가 인격을 잃고 동포를 해친다는 설정이 참혹하다. “‘경성크리처’의 괴수엔 슬픈 정서가 있다”던 정동윤 감독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굶주리던 백성이 식욕만 남은 좀비로 변하는 ‘킹덤’의 정서와도 맞닿았다.
다만 ‘경성크리처’가 이런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진 못한다. 괴수가 이야기 후미로 밀린 탓이 크다. 작품에서 괴수는 압도적인 살상력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친다. 지배국에 의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괴수가 발휘하는 갑작스러운 모성에 묻혀 휘발된다. 드라마는 대신 주인공 태상과 채옥의 서사에 공을 들인다. 두 사람이 만나 위기를 겪으며 감정을 쌓는 과정이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그려진다. 그러나 ‘계획-실행-위기-탈출’ 구조가 반복돼 긴장감은 점점 느슨해진다. 자신의 나약함과 군주의 본분 사이에서 갈등하던 ‘킹덤’ 속 이창(주지훈)과 달리, ‘경성크리처’의 태상은 별다른 고뇌 없이 각성해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적다.
내년 1월5일 공개되는 파트2에서 이런 약점이 얼마나 해소될지가 관심사다. 파트1 쿠키영상을 보면 새로운 인물에게서 괴수가 될 조짐이 보인다. 괴수의 촉수가 향하는 곳은 일본일까 조선일까. 괴수가 된 이가 인간 시절 가졌던 감정과 인격은 얼마나 끈질기게 남을까. 파트1은 ‘떡밥’을 흘리는 데 인색해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렸다. 파트2에서 실마리가 풀리면 혹평이 많은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도 있다. 작품은 시즌1 공개 전부터 시즌2 제작을 시작했다. 시즌2는 내년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