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7)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7)

‘우유를 따르는 하녀’는 숭고한 노동의 아름다움을!

기사승인 2024-07-22 16:06:54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1658~1659, 45.4x41cm,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라익스 뮤지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고 그 다음이 ‘우유를 따르는 하녀’일 것이다. 

필자는 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평소에 이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작품 앞에 선 순간 '스탕달 신드롬'이 일어났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이나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격으로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1817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겪은 경험을 ‘로마, 나폴리, 피렌체 Roma, Naples et Florence’에서 묘사한데서 유래하였다.​​

필자는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일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매일 시장을 보고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하는 걸 즐긴다. 틱낫한 스님은 '생활인의 선(禪)'은 자신의 직분을 다하며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듣기 이전에도 청소나 요리 등 집안일을 하며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몰입하려 했다. 

그런 나의 삶과 교차된 탓인지 ‘우유를 따르는 하녀’를 본 순간, 그의 몰두하는 자세에서 스탕달 신드롬 일어나 잠시 먹먹한 충격을 받았다.​

페르메이르는 1658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그림을 그리던 피테르 데 호흐(Pieter de Hoch, 1629~1684)의 집안 풍경을 보게 되었다. 신화나 종교화를 주로 그리던 페르메이르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중산층 가정의 집안’으로 눈을 돌렸다.

피테르 데 호흐, 안뜰에 있는 사람들, c. 1663~65,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라익스 뮤지엄

이 작품은 페르메이르에게 영향을 준 피테르 데 호흐가 델프트에서 그린 집안 모습 중 하나이다.

열린 문으로 나무가 보이는 소박한 중산층 가정의 안뜰 정경으로 호흐는 새로운 주제, 즉 밝게 빛나는 인물에 집중했다. 안뜰에서 와인을 마시던 남자가 여인을 향해 몸을 기울여 무언가 간곡히 말을 하고 있다. 유혹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여인은 자신의 잔에 레몬즙을 짜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당시에는 와인에 레몬즙을 짜서 마셨다.​

청색 치마에 노란 옷을 입은 하녀는 주인의 이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을 보이며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이 그림 속 하녀의 옷을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게 똑같이 적용했다. 청색은 금보다 비싼 준보석인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청금석 靑金石)를 갈아 아마인 유를 섞어 만든 안료로, 노란색은 인도에서 망고 잎만 먹여 키운 신성한 소에서 나온 오줌으로 만든 유산틴 산(Euxanthic Acid)의 인디언 엘로 안료로 칠해진 것이다. 이렇게 귀하고 비싼 천연 재료로 만든 물감 값은 페르메이르를 파산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안료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페르메이르가 하녀에게 청금석을 빻는 방법을 알려주다 서로의 손이 스친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 ‘진주목걸이를 한 여인’과 델프트의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등 명화가 벽에 걸려 있는 장면이 나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관람자를 집중하게 만든다. ​​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이 그림의 구도는 균형이 매우 잘 잡히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옮기면 전체의 안정감이 무너질 듯하다. 이 그림에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자기 일에 몰두하는 하녀의 모습이 숙연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 비평가가 “일찍이 어떤 네덜란드 화가도 페르메이르만큼 여성을 극찬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인물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 같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정경의 조용한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게 한다. 그에게 회화의 진짜 주제는 ‘빛이 사물의 형태와 질감, 그리고 색채에 미치는 영향’이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창문으로 쏟아지는 빛이 각 사물의 색감을 고조시키며 형용할 수 없는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우유를 따르는 하녀’를 자세히 보면 그가 선이 아니라 구슬과 같은 빛의 알갱이로 사물의 윤곽선을 그려 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우유 단지 가장자리 색점 같은 물감 자국을 보면 그 것이 확연하다. 

서른 살에 영국 내셔널 갤러리 관장이 된 케네스 클라크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밝은 부분을 둥근 색점으로 처리한 것은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한 증거이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풍경화가인 카날레토(Antonio Canaletto, 1697~1768)도 페르메이르와 같은 기법을 구사했다. 구식 카메라로 초점을 맞춰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짝이는 빛이 자잘한 둥근 점으로 보이며, 그 빛이 반사되며 중첩된다는 점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사물이 빛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통해 색상의 강약을 조절하는데 능숙했다. 특별한 모양의 빵덩어리가 가장 강렬한 빛을 받고 있으며 이는 물감을 두껍게 칠한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임파스토란 ‘반죽된’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해서 최대한의 질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기법이다. 붓이나 팔레트 나이프 또는 손가락으로 직접 물감을 짜서 바르는 방식으로 렘브란트와 반 고흐가 자주 쓰던 기법이다. 

바로 뒤 벽에 처음 놓았던 항아리 선반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모든 선이 수렴하는 하나의 소실점을 가진 선원근법을 사용하였고, 이 작품에서는 하녀의 오른팔 위에 핀을 찍어 소실점으로 잡았다. 그녀의 걷어 올린 소매에 드러난 팔뚝은 도자기를 받치기 위해 힘이 들어가 있고 얼굴과 함께 그을려 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세부 묘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무채색으로 회칠한 벽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얼룩이나, 구멍, 못까지도 세세하게 그린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소매의 접힌 부분에는 파란색을 칠하고, 거기에 다시 노란색으로 색을 입혀 두가지 색실로 천을 직조한 듯이 교묘하게 아름다운 색감을 구현해 냈다. 본래 크기도 작은 그림이지만 구석구석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보면 세부 표현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바늘 땀과 솔기 부분 그리고 접힌 소매 주름의 명암 표현이 신의 손길로 그려졌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위 사진은 그녀의 팔과 벽 부분에 유화로 색을 입히는 과정으로 검은색과 파란색을 적외선 반사 이미지로 찾아낸 것이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위 사진을 보면 벽의 채색이 완성작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벽을 파란색으로 칠했다가, 나중에 흰색으로 칠해서 파란색이 잔영이 남아 있음을 적외선 분석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발난로를 다시 그려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한 부분.

이제 마지막으로 그림의 우측 하단부 사람 모양이 있는 벽의 타일을 보자.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되는 도자기를 대체하는 요업이 델프트에서 유럽 최초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건축 자재로 영국과 독일에서 가져온 흙으로 구운 델프트 산 타일이 유명해졌다. 만약 벼룩시장에서 단순한 사람 문양의 델프트 타일을 그린 치밀하고도 정교한 작품을 발견한다면 가격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사야 한다. 혹시 당신이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실처럼 우유가 흘러내리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는 하녀의 그을린 얼굴과 걷어 올린 소매로 드러나는 검게 탄 건강한 팔뚝에서 우리는 노동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또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고 건실하게 일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시민 정신과 건강한 윤리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페르메이르는 그림에서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 같은 비물질적인 것도 구체적인 ‘질감’으로 전달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청교도 정신을 구현한 바로크의 대가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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