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가정에서 화상을 입거나 개에게 얼굴을 물리는 등 아이의 안전이 상당히 위태로운 사례가 있었다. 민간단체 전문가가 정부에 사례 관리를 의뢰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지난 2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지원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에 담긴 미혼모 지원 민간단체의 제보 내용이다.
‘느린 학습자’로도 불리는 경계선 지능인이 홀로 아이를 키우지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은 부재하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70~85인 사람을 뜻한다. 지적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다고 해 ‘경계선’이란 명칭이 붙었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아 현황 파악이 어렵다. 때문에 명확한 실태조사나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은 인구의 11~13%가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한국의 경계선 지능인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565만~667만명으로 추정된다.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중에도 경계선 지능인이 꽤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이들을 지원하는 법률은 없다. 관련 법률 4건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에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는 조례가 있지만, 주로 평생교육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거나 아동과 자립준비 청년인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그친다. 자녀를 양육하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양육인인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경계선 지능인이라도 생활고,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위험이 높을수록 양육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홀로 양육을 전담한다면 부주의나 돌봄 능력 부족으로 의도치 않은 아동 학대와 방임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도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중증의 지적장애와 다르게 경계선 지능인은 적절한 양육 지원이 제공된다면 부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며 영국의 사례를 들었다. 영국 공공보건청은 경계선 지능을 ‘학습장애’로 명명하고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이들을 지원한다. 학습장애 양육 부모는 각 지역에서 운영 중인 학습장애지원팀에 연계돼 고용, 학습, 건강 등의 서비스를 받는다.
허 조사관은 한국도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의 양육을 지원하고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를 규정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이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 제공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는 “한부모가족 복지시설 등에서 출산하고 양육하는 한부모 중 경계선 지능인으로 추정되는 경우 무료 검사를 실시하고, 각 지자체에 통보돼 해당 가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를 희망복지지원단의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가정방문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출생 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올해 시행되지만 아동이 태어나 마주하는 위기는 출생과 등록 과정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도 국가적 차원에서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는 법률 마련이 시급하지만 지지부진한 논의에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각 지자체별로 경계선 지능인을 지원하는 조례가 만들어지고, 서울시는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도 설립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이들을 돕는 법은 없다”며 “미국조차도 경계선 지능인만을 위한 법이 부재한 형국인데,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하기 어려워 국회에서 입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계선 지능인의 국가적 지원책 마련을 위해 실태조사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30년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로 환자를 진료하며 20년 넘게 대안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