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 여부가 결정된다. 과학기술계 발전을 위해 해제가 꼭 필요하다는 시선과 출연연 통폐합·구조조정을 위한 초석이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3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25개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논의한다. 25개 출연연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서 해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공운위는 기재부 장관과 국무조정실 차관 등 정부 인사와 학계, 경제계, 법조계, 노동계 등의 위촉직으로 구성된다.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의 지정 및 해제와 임원 임명, 실적 평가 등을 심의·의결한다.
공운위는 관례적으로 매년 1월 공공기관의 지정 및 해제 등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번에 해제 안건이 통과되지 못하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계는 지난 2007년 공운법 제정 이후 과기 출연연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해달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연구기관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공공기관의 틀 안에 갇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인력운영과 예산집행, 기관평가, 인건비 등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지침이 출연연에도 적용돼 왔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크다. 출연연 연구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NST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 2022년까지 출연연을 떠난 연구자는 모두 1066명이다. 2022년 195명, 2021년 250명, 2020년 229명 등이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인력 운영 및 임금 지급 등에도 제약이 커 인재들을 붙잡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출연연에도 적용, 지난 2019년 한국원자력연구원 공개 채용에 중국 국적자가 채용됐던 사례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국가보안시설이다. 외국인을 채용할 경우 국가기밀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 2022년 출연연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폐지했다.
다수의 과학기술계 노동조합은 과기 출연연의 공공기관 해제 추진에 찬성 목소리를 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 등은 성명서를 통해 출연연 공공기관 해제 논의를 적극 환영한다며 조속한 추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공공기관 지정 해제는 과학기술계의 숙원 사업”이라며 “공공기관에서 해제되면 연구자들이 연구에 보다 집중해 능력을 키우고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은 지난 23일 “구조조정을 위한 공공기관 해제 방안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출연연을 공운법에서 제외시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원의 지침으로 출연연을 손쉽게 통폐합하려고 한다는 내용이다.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앞선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나 지난해 12월, 1월에 나온 자료들도 공공기관에서 해제해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4대 과학기술원이 공공기관에서 해제됐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부의 예산이나 경영지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10여년 이상 지속된 연구 현장의 건의 및 요청을 바탕으로 논의된 사항”이라며 “출연연 통폐합을 위해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공공기관 해제 이후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연연에서 해제를 요청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구 자율성 보장”이라며 “단순히 관리자가 기재부에서 과기부로 바뀌는 정도로는 곤란하다. 과기 출연연에 추후 적용될 지침이 인력·조직 운영 및 예산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