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인 흉내 코미디언…자성 없는 K콘텐츠 인종차별

필리핀인 흉내 코미디언…자성 없는 K콘텐츠 인종차별

기사승인 2024-02-06 15:08:32
인기 유튜버 쯔양이 공개한 코미디언 김지영과의 먹방. 김지영은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니퉁을 연기했다. 쯔양 유튜브 채널 캡처

세계로 수출되는 K콘텐츠가 거듭된 인종차별 논란으로 부족한 문화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엔 930만 구독자를 거느린 인기 유튜버 쯔양이 필리핀 여성을 흉내 낸 코미디언과 ‘먹방’ 영상을 찍어 공개했다가 인종차별이란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

문제가 된 영상은 지난달 28일 공개된 베트남 음식 ‘먹방’이다. 영상에서 쯔양은 “구독자와 함께 먹방을 하려고 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분이 함께하고 싶다고 해서 초대했다”며 니퉁을 소개했다. 니퉁은 코미디언 김지영이 KBS2 ‘개그콘서트’에서 연기하는 캐릭터다. 필리핀에서 살다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는 설정이다. 그는 ‘삼겹살’을 ‘쌈꾭쌀’로 발음하는 등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했다.

온라인에선 이런 설정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자신을 필리핀인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해당 영상에 “필리핀엔 니퉁이란 이름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영상”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필리핀 누리꾼도 “처음엔 필리핀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뿌듯했으나, 니퉁이 필리핀 사람을 흉내 내거나 조롱하고 있음을 알고 마음 아팠다. 우리의 억양은 농담이 아니며 결코 비웃어서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들도 “저것도 인종차별”이라거나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고 댓글을 썼다.

쯔양은 일주일여 만인 5일 사과문을 쓰고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그는 필리핀어로 적은 글에서 “우리는 필리핀을 존중하고 필리핀 시청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이 영상이 시청자들께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JTBC ‘킹더랜드’는 아랍 왕자 캐릭터를 등장시켜 아랍권 문화를 왜곡했다고 비판받았다. 해당 방송 캡처.

K콘텐츠가 외국인을 전형적인 이미지로 재현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최고 시청률 13.8%를 기록한 JTBC 인기 드라마 ‘킹더랜드’는 아랍 왕자 사미르(아누팜 트리파티)를 술과 여성을 탐하는 인물로 묘사해 도마 위에 올랐다. tvN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 전쟁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현지 넷플릭스에서 퇴출됐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국 국적인 아이돌 가수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웃음 소재로 삼거나, 한국인 코미디언이 일본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한국어를 어설프게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은 다문화 사회 진입을 코앞에 뒀다. 통상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로 보는데, 지난해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 수는 전체 인구의 4.89%였다. 그러나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발표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에 인종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K콘텐츠의 인종차별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을 담은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혐한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한국에서 겪은 인종차별을 토대로 K콘텐츠에 보이콧을 제안한 유튜버도 있다. 구독자 118만명을 거느린 인도 유튜버 ‘니키타 타쿠르’다. 그는 지난해 말 공개한 ‘왜 인도인은 한국에서 거부당하는가’란 제목의 동영상에서 한국 내 인종차별 사례를 소개하며 “K드라마를 좋아한다면 계속 봐도 좋다. 그러나 K드라마를 위해 당신의 자존심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댓글을 통해서도 “이 영상을 K팝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공유하고 우리가 (K콘텐츠를) 보이콧하는 게 해결책인지 의견을 남겨달라”고 청했다. 이 영상은 800만 건 넘게 조회되며 현지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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