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선 가운데 의사 커뮤니티에 사직 전 병원 측 자료를 지우거나 수정하라는 내용이 공유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요] 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란 제목의 게시글이 돌고 있다.
해당 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 근무자로 알려진 블라인드 글 작성자 A씨가 의사 커뮤니티 앱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이 같은 제목의 글을 공유하면서다. A씨는 “대단들 하다. 기업자료 지우고 도망가기”라고 비판했다. 현재 A씨가 쓴 블라인드 글은 삭제된 상태다.
전공의로 추정되는 메디스태프 글 작성자 B씨는 “바탕화면, 의국 공용폴더에서 인계장을 지우고 세트오더도 다 이상하게 바꿔버리고 나와라. 삭제 시 복구 가능한 병원도 있다고 하니까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라고 밝히고 의료현장의 혼선을 부추길 수 있는 내용을 전했다. 인계장은 교대 근무자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세트오더는 필수처방약을 처방하기 쉽게 묶어놓은 세트를 의미한다.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가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계정 비밀번호를 바꿀 것도 종용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PA간호사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B씨는 “PA가 전공의 선생님 ID로 입력 오더 시 책임은 전공의가 모두 뒤집어쓰게 된다”며 “짐도 남기지 말라. 나중에 ‘짐 남겼으니 사직서는 가짜다’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공분이 일고 있다. 누리꾼들은 “중소기업에서도 업무 관련 폴더 포맷하고 나가면 민사로 처벌받을 수 있는데 병원은 그런 것 없냐”, “자기들 때문에 업무 증가해서 휴가도 반납하고 남아서 일하는 사람 생각도 해야 한다”, “이참에 정부가 의사들 버릇을 고쳐줬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은 이날 사건을 접수해 게시자 IP 추적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의사들의 집단행동 관련 고발이 이뤄질 경우 신속하고 엄정히 수사한다는 방침 아래 주동자에 대해선 구속 수사까지 검토하기로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수사기관에 고발됐을 때 정해진 절차 내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할 것”이라며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출석에 불응하겠다는 확실한 의사가 확인되는 개별 의료인에 대해선 체포영장을, 전체 사안을 주동하는 이들에 대해선 검찰과 협의를 거쳐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서와 보건복지부 간 핫라인을 바탕으로 합동 현장조사도 벌일 계획이다. 경찰이 복지부와 이날 조사하는 병원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한양대병원 △상계백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등이다.
복지부는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 상태다. 진료유지명령은 의료인의 사직서 제출 등을 통한 진료 중단을 금지하는 명령이다. 진료유지명령 위반이 확인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 범죄 구분 없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