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천수만 집결을 命 받았습니다”

흑두루미 “천수만 집결을 命 받았습니다”

- 서산 천수만, 흑두루미 1만4천마리 모여들어
- 국제보호종 수천마리 일시에 뜨고 내리는 진풍경
- 대부분 순천만과 이즈미현에서 날아와

기사승인 2024-03-12 11:00:15

'서산 천수만 전 세계 흑두루미 70% 모여…'세계적 철새 도래지인 충남 서산 천수만에 북상하는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 철새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전 세계 흑두루미 2만여 마리 중 70%인 1만4천여마리가 모였다가 무리지어 고향인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는 국제적 보호종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이다.

- 겨울철새들, 3월 하순이면 대부분 한반도 떠나
- 어느새 제비 등 여름새 선발대 찾아와
- 올 가을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길

어느 새 봄이다. 우리나라 대표 간척지 중 하나인 천수만은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드넓은 들판 중간중간 트랙터가 논을 갈고 봄을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이 서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1월 말부터 남녘이나 이웃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고 중간기착지인 천수만을 찾기 시작한 겨울 철새들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모여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다. 번식지인 시베리아나 중국으로 날아가려면 충분히 에너지를 축척해야하기 때문이다.

서산시 고북면 천수만 간척지에서 지난 9일 확인된 만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화려한 날갯짓과 독특한 울음소리로 탐조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흑두루미는 두루미류에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의 겨울 철새로 동부 시베리아, 만주, 몽골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 등지에서 겨울을 보낸다.

3월도 초순이 넘어서면서 이동새들은 농부에게 겨우내 빌렸던 먹이터와 쉼터를 돌려주어야한다. 어느사이 여름철새인 제비 선발대도 천수만 하늘을 날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만 마리가 넘는 천수만의 겨울 진객 흑두루미는 넓은 들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시에 뜨고 내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야생생물II급이자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된 보호조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VU)으로 분류돼 국제적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다.
'진객위해 충분한 먹이주기'
겨울 철새 먹이 나누기는 문화재청, 서산버드랜드, 김신환동물병원, 천수만도래지지킴이단의 후원으로 지난 10월 말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 천수만을 찾은 철새들에게 약 40톤 가량의 먹이(볍씨)를 공급했고, 독수리에게는 회당 120~150kg씩 육류부산물을 공급했다. 서산버드랜드는 농어촌공사 공공임대 휴경지 5ha를 활용해 수확한 벼를 겨우내 천수만 겨울 철새 먹이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산버드랜드에 따르면 한국물새네트워크와 함께 천수만 A 지구에서 흑두루미 개체 수를 살펴본 결과 간월호 동쪽에서 1만1000마리, 서쪽에서 3000마리 등 1만4000마리가 관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수가 2만 마리인 점을 감안하면 이동시기를 맞아 70%가 천수만을 찾은 셈이다. 서산버드랜드는 조류인플루엔자 등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기존 고북면 사기리와 함께 부석면 간월도리에 먹이 주기를 나눠 실시한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지난해 일본 이즈미 지역과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로 흑두루미 1,700여 마리가 폐사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개체수가 거의 회복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성우 서산버드랜드 주무관은 “겨울 진객 흑두루미 분산을 위해 먹이 제공 지역을 다양화한 것이 효과를 봤다. 향후 무논 조성 확대 및 서식 환경 안정화를 통해 세계적인 흑두루미 도래지로서 천수만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이즈미市 월동지에서 북상 소식이 들린 후 다음 날 천수만의 흑두루미 수가 증가하는 패턴을 보여줘 일본에서 월동한 개체들이 대부분 천수만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이즈미市 '학 박물관크레인 파크 이즈미' 공식사이트 확인 결과 3월 11일 이즈미현을 떠난 흑두루미 숫자는 총 11,969마리이다. 아직도 순천만에 남아있는 4천여마리의 흑두루미도 이 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어 한동안은 천수만의 넓은 들판에서 흑두루미 무리의 힘찬 비상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이유는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서다. 천수만을 떠난 대부분의 겨울새들은 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얼음이 녹고 새싹이 움트는 4,5월 경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다. 그곳에서 여름내 새끼를 먹이고 키우다가 다시 물이 얼기 시작하는 10월 하순이 되면 월동지를 향해 긴 여정이 시작된다.

한종현 Birdingtour Korea 대표는 “예년보다 빨리 천수만으로 이동했지만 먹이를 비롯한 서식지 환경이 좋아 개체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월동지 환경은 번식지 환경 못지않게 흑두루미 개체 증식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길 서산버드랜드사업소장은 "흑두루미 분산을 위해 먹이 제공 지역을 다양화한 것이 효과를 내는 것 같다"면서 "향후 무논 조성 확대 및 서식 환경 안정화를 통해 세계적인 흑두루미 도래지로서 천수만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천수만을 찾은 가창오리 무리가 천수만 간월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밖에 가창오리 5만여마리도 북상하기 전 중간 쉼터로 천수만을 이용했다. 한 겨울 최대 개체수 180여마리까지 보였던 독수리 무리는 대부분 떠나 50여 마리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역시 겨울을 보낸 큰기러기와 쇠기러기의 최대개체수는 150,000마리, 큰고니 600여마리는 2월 말경 일찌감치 번식지를 찾아 떠났다.
'흑두루미와 함께 천수만 방문한 검은목두루미'
검은목두루미는 원래 북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번식하고 겨울이 되면 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가는 철새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천연기념물 제 45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몸은 대부분 회색이며, 머리와 목 앞부분이 검은색이다. 세계적으로 개체수는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다른 두루미류 무리에 섞여 소수만 도래한다.

서산 천수만 철새도래지에는 이처럼 겨울새들의 월동지는 물론 북상하는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등 법정보호종의 허브공항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베리아로 먼 길 떠날 준비 완료’
흑두루미는 먹이가 풍부한 천수만에 머무는 동안 2,000~3,000km를 날기 위해 체력을 보충하고, 겨우내 부족했던 기력을 회복한다. 흑두루미 무리가 천수만을 상징하는 A지구 내 곡물저장고인 사일로를 배경으로 날고 있다.

흑두루미와 함께 천수만을 찾은 검은목두루미가 힘찬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조규태 사진가는 “천수만은 조류 촬영 명소여서 즐겨찾지만 요즘처럼 수천마리의 귀한 새들이 모여 있는 장관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서 “아무사고 없어 귀향했다가 올 가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사진=조규태)

흑두루미 수천마리가 동시에 날아올라 파란 하늘을 덮고 있다.

흑두루미는 남서풍 부는 따뜻한 어느 봄날 상승기류를 타고 무리지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무리 지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고래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러 뭉치의 무리가 뭉쳐졌다 나뉘었다 하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서산=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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