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 상승으로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고공행진 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과 연내 금리 인하 시점이 밀리면서 상승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디지털 금이라 불리는 비트코인 가격은 추락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험자산인 만큼 리스크 여파에 휩쓸렸단 분석이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국제 금 가격은 온스당 2388.4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금 가격은 지난 12일 온스당 2418달러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장 중 2448달러를 넘으면서 기록적인 상승세를 선보인 바 있다.
이같은 국제 금 가격 오름세는 중동 지역에서 불거진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이다.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IRGC) 측은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진실의 약속 작전’을 개시한다고 밝히며 탄도·순항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지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래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첫 직접 공격이다. 공습 이후 이스라엘 군 대변인은 이란에 대한 중대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안전자산인 금의 단기 상승 변동성을 주는 명분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밀린 점도 금 가격 상승 배경으로 분석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인플레이션이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목표치(2%)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면서 “확신을 얻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통상 금 가격은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때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수단으로 부각된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은) 명목 가격 기준으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실질 가격으로 보면 온스당 2500달러까지도 돌파가 가능하다”면서 “리스크 헤지 용도로 금만큼 안전한 자산은 없다. 방향성은 여전히 낙관적”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도 올해 연말 기준 금 가격이 온스당 27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관련 ETF 상품 수익률도 동반 상승세를 나타낸다. 18일 기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KRX금현물' ETF는 최근 한 달 새 16.95% 오른 1만5310원을 보였다. 같은 기간 삼성증권의 '삼성 KRX 금현물' ETF도 16.33% 상승한 1만8620을 기록했다. 금 선물에 투자하는 TIGER 골드선물(H) ETF 역시 10.57% 급등한 1만5895원을 시현했다.
그러나 디지털 금(金)으로 불렸던 비트코인은 급락세를 보인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18일 새벽 1시40분경 비트코인 가격은 전일 대비 6.52% 내린 5만9648달러에 거래됐다. 비트코인 가격이 6만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월말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가인 7만3797달러 대비 15% 급감한 수준이다.
이는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소식이 금과 정반대인 악재 요인으로 작용한 탓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홍콩이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승인함에 따라 신규 자금을 대거 흡수할 수 있는 호재를 맞이했음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리스크 요인이 호재를 상회하는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글로벌 대형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임원 출신 밥 엘리엇은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비트코인의 지정학적 위기 회피 수단으로서의 매력이 반감됐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오름세를 시현하기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가상자산 업체 LMAX 그룹의 시장 전략가인 조엘 크루거는 “대형 투자자들이 현재 가격에서 비트코인 매수에 나서지 않아 약세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면서 “비트코인이 다시 상승하기 전 예상보다 긴 횡보나 약세장이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