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 업계가 해외 진출을 목표로 영업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이 더딘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에서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뷰노, 루닛, 코어라인소프트, 제이엘케이 등 의료 AI 기업들이 일본, 미국 등 현지 업체들과 파트너십 체결, 인수 절차 등에 나서고 있다.
뷰노의 일본 파트너사인 M3 AI는 최근 일본 캐논 메디칼시스템즈와 현지 공동 영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M3 AI는 뷰노의 ‘뷰노메드 흉부 CT AI’에 대한 일본 시장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영업·마케팅 전문 기업이다. 이번 계약에 따라 M3 AI는 케논메디칼시스템즈의 의료기관 인프라를 공유하게 된다. 일본 전체 의료기관 중 ‘의료 영상 저장전송 시스템’(PACS)을 활용하는 병원의 30% 이상과 판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접점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뷰노 관계자는 “뷰노메드 흉부 CT AI는 일본 진출에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의 인허가를 추진할 예정이다”라며 “해외 사업을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해 성과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루닛은 미국 유방암 검진 특화 AI 기업인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이하 볼파라)를 인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루닛은 이번 인수를 통해 1억장이 넘는 유방촬영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미국 시장에 대한 볼파라의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세일즈 능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루닛은 보폭을 넓혀 덴마크 AI 기업 래디오보틱스오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서로의 제품을 교차 판매하는 전략적 유통 협력도 추진하기로 했다. 루닛 관계자는 “제품군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볼파라 인수 뒤 미국 시장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AI 신약 개발 플랫폼인 루닛 스코프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 20여곳과 연구 협력을 진행 중이며, 이에 따른 성과가 곧 가시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코어라인소프트는 이달 18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북미, 유럽 등의 영업 확대를 위한 자금을 마련했다. 미국과 유럽에 현지 법인을 두고 의료기관 공급 계약을 늘려가고 있다. 제이엘케이도 의료 컨설팅 기업을 통해 미국,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한 상태다.
의료 AI 업계가 경쟁적으로 해외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을뿐더러 복잡한 규제 탓에 안착하기가 쉽지 않다.
의료 AI 기업 임원 A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를 진행해 AI 기업들이 비급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줬지만 이를 활용해 매출을 올리긴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비급여 AI 제품을 이용하려면 환자가 동의서를 2번 작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AI가 생소한 환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의사들도 관련 설명을 할 때 난감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 AI 기업의 파트장 B씨는 “통합심사를 통과한 혁신의료기기는 보통 임상시험처럼 이뤄지고 일부 대학병원에서 주로 사용된다”며 “최근 의과대학 증원 이슈로 대학병원 환자들이 줄어들면서 이용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부터 난항을 겪는다”고 했다. B씨는 “비급여 상한액 범위를 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며 “국내 시장에서 의료 AI 기업들이 성공하긴 어렵다”고 짚었다.
식약처는 기업들의 어려운 상황을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규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 담당자는 “허가 및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디지털의료제품법을 제정했다”며 “임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수가 개선 등에 대한 업계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규제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시장이 작은 만큼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에도 신경 쓰고 있다”며 “미국 식품의약국, 유럽연합 등과 함께 여러 선진국과 통합된 의료 AI 규제 및 가이드라인을 협의해 국내 허가만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