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또 1000명 늘어나는데”…정착 힘든 간호사

“내년에 또 1000명 늘어나는데”…정착 힘든 간호사

기사승인 2024-05-03 14:00:18
서울의 한 의료기관. 간호사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대학병원들의 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간호사들의 입지가 위태롭다. 병원의 권고에 따라 무급휴가를 쓰는 사례가 늘고, 예비 간호사의 발령은 무기한 연장되고 있다. 병원들의 적자 구조가 지속될 경우 기존 인력도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제주대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비상 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전공의가 떠난 의료기관들은 환자가 줄면서 매일 10억원 안팎의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차를 사용하거나 무급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상계백병원 등 일부 병원은 자율적 보직수당 반납 동의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간호사들이 겪는 피해가 크다. 일부 병동이 폐쇄되면서 갑작스럽게 다른 병동으로 옮겨가는 것은 물론 반강제로 무급휴가에 들어가야 했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반대로 현장에 남은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업무까지 떠안아야 해 피로감이 커진다. 입사를 앞둔 예비 간호사들은 발령 없이 무기한 대기 상태에 놓여있다. 

무기한 대기 예비 간호사들…“발령까지 최대 2년도 예상”

지난 4월 서울권 대학병원에 입사가 예정돼 있던 예비 간호사 최지원(가명·25세)씨는 “의사 파업 때문에 대기발령 공지가 떨어졌다는 선배들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나 역시 입사 예정일을 앞두고 병원으로부터 ‘발령을 미뤄야겠다’는 통보를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며 “병원에서도 확답을 주기 어렵다고 해 막막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예비 간호사의 기나긴 발령 대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을 겪는 과정에서도 병원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간호사 모집 정원이 줄고, 대기 기간은 늘어났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2022년 간호사 채용 인원이 250명이었지만 지난해는 50명으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세브란스병원(신촌·강남)의 모집 인원 역시 927명에서 320명으로 줄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학병원 취업을 두고 간호학과 학생들 사이에선 ‘용암 속 취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좁은 취업문을 넘어섰더라도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까지 1년 이상 기다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 순천향대병원 등 다수 병원은 올해 신규 간호사 채용이나 대기자 발령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취업에 성공한 신주희(가명·26세)씨는 “보통 한두 달에 한 번씩 입사가 진행되는데, 요즘은 극소수만 들어가거나 아예 못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라며 “국립대병원은 지난해 입사 예정자도 아직 기다리고 있어서 올해 신규는 언제 배치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1년은 고사하고 최대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돈다”며 “대기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중소병원을 알아보거나 취업을 위해 다른 공부를 시작한 동기들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올해 들어 대기 중인 간호 인력을 한 명도 부르지 못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채용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 인원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간호학과 정원 매년 확대…“밑 빠진 독 물 붓기” 

채용이 부담스러운 현장 분위기와는 달리 정부는 2025년도 간호대 입학 정원을 1000명 증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임상간호사가 부족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간호대 입학 정원은 현재 2만3883명에서 내년 2만4883명으로 증가한다. 앞서 정부는 2010년부터 꾸준히 700~800명씩 간호학과 입학 정원을 확대해 왔다.  

전문가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한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적은 이유는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직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한간호협회의 ‘병원 간호 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사직자 10명 중 8명 이상이 5년 이내 경력자였다. 사직률은 2020년 14.5%에서 2022년 16.0%로 상승했다. 직종을 바꾸는 경우도 2018년 9.4%에서 2022년 10.8%로 늘었다. 협회 관계자는 “시간을 들여 양성한 전문 인력인 간호사들이 왜 장기근속을 못하고 의료현장을 떠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하다”라고 짚었다. 

경기권 대학의 한 간호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의대 증원 이슈까지 겹치면서 병원 취업은 갈수록 힘겨워진다”며 “‘동기간 면접제’ 시행으로 병원 진입 문턱은 한층 높아졌고, 수많은 졸업자들과도 경쟁해야 해 학생들의 고민이 크다”고 언급했다. 이어 “취업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년 간호사를 대거 배출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결국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 간호면허증 소지자만 늘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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