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7)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7)

<플란더스의 개> 넬로는 왜 이 작품 앞에서 죽었는가?

기사승인 2024-05-13 10:11:02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 1611~14, 패널에 유채, 중앙 패널 421x311cm, 양쪽 날개 421 x 153cm,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17세기 초,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유럽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역사에는 ‘80년 전쟁’이라고 기록한다. 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한 북부 7개 주는 독립하였으나, 남부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는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안트베르펜은 여전히 독립전쟁의 여파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돌아온 뒤, 12년간은 휴전으로 그곳은 새로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609년 루벤스는 오스트리아의 총독 알프레히트와 이사벨라의 궁정화가로 임명되었다. 그것은 안트베르펜에서 루벤스가 중요한 작품 의뢰를 받으며, 예술가로서 평판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성 왈부르(St. Walburga) 교단이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성당을 위해 <십자가를 세움>을 주문했다.

1611년 당시 안트베르펜 시장이며 영향력 있는 화승총 길드의 회장인 로콕스(Nicolaas Rocks)는 친구인 루벤스에게 <십자가에서 내림>을 보여주는 삼면화를 주문했다.

그 삼면화는 16세기 초에 성당 내에 있는 길드의 제단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고, 화려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마도 이전 제단화는 1566년의 성상파괴운동으로 사라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루벤스는 그 해 9월에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정확히 1년 후, <십자가에서 내림>의 중앙 패널이 성당에 설치되었다. 그 작업으로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반종교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선점했다. 나머지 양 날개 패널인 <방문>과 <성전에서의 그리스도 배알>은 이 년 뒤, 1614년에 겨우 완성되었다. 여러 자료에서 캔버스에 그려졌다고 기술하여 혼동이 있다.

<십자가를 세움>은 캔버스에, <십자가에서 내림>은 분명히 ‘목판’에 그려졌다.

​왼쪽 패널 <방문>, 1614, 421x 153cm

왼쪽 패널은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사촌 언니 성 엘리자베스를 만나는 장면이다. 오른쪽 패널은 예언자 시메온(Simon)이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품에 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운반자가 되어 왼쪽 패널과 연결된다.

황혼의 붉은빛으로 채색된 오른쪽 패널과 지평선의 색과 높이가 같아 한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방문> 부분

넝쿨식물이 덮인 도리아식 현관에서 하녀를 동반한 빨간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가 요셉의 보호를 받으며 엘리자베스와 남편 샤가라의 환영을 받는다.

루벤스는 특히 낮은 각도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매우 극적으로 잘 연출했다. 엘리자베스는 마리아의 불룩한 배를 부드럽게 만지며 “여자 중에 복이 있음에,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 말한다(누가 1:42).

어린 하녀의 환한 표정은 겸손한 성모 마리아의 표정과 대조를 이룬다. ​​성화에서 처음 보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성모는 흰 피부가 돋보이도록 빛을 받는다.

<방문> 부분

​아치 사이로 지평선까지 낮은 평원이 펼쳐지고, 그 색조는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베네치아 그림들을 연상시킨다. 그리스도와 불멸의 은유인 공작새와 모이를 먹는 수탉이 있다. 그리고 하인인 듯한 남자가 계단에 있다.

<십자가에서 내림>가운데 패널

루벤스는 낮은 수평선 너머로 황혼이 저무는 배경에 십자가에서 내려진다는 구상을 했다. 양쪽으로 나무 사다리가 십자가에 걸쳐 있고, 왼쪽에는 아버지 요셉이 아닌 아리마테(Arimathea)의 요셉이 오른손에 흰 장막을 움켜쥐고, 왼손은 죽은 그리스도의 어깨를 받치고 있다. 

강렬한 빨간 옷을 입은 사도 요한은 가장 젊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종교화에서 십자가 옆에서 수염이 없는 이는 사도 요한으로, 15세기 플랑드르의 로히르 반 데르 베이덴이 빨간색 옷을 입은 요한을 그리기 시작한 뒤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는 오른발을 사다리에 올린 채 예수의 몸을 받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오른쪽은 바리새인 니코데무(Nicoremus)가 그리스도의 몸을 내리도록 돕는다. 그 아래에는 피와 가시관이 담긴 광택 나는 놋그릇과 함께 예수 수난 이야기를 암시하는 인리(inri)라는 글귀가 돌에 눌려 있다.

<십자가에서 내림> 부분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각선 구도와 화려한 색조였다. 하지만 계속 바라보면 곧 핏기 없는 푸르스름한 그리스도의 피부색이 눈길을 끈다. 이 그림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포장을 걷어내고 진실에 접근하면, 가장 처절한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다.

<십자가를 세움>에서와 같이 성모는 아들의 주검으로 비탄에 빠져 그리스도의 시신과 같은 낯빛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이것이다. 야고보의 모친과는 자매라서 얼굴이 비슷하게 그려졌지만 피부색은 대조적으로 묘사를 한 루벤스의 치밀한 구성이다. 또한 여인들의 외양을 중동 사막에 사는 유대인이 아닌 유럽 여인들로 금발과 반짝이는 화려한 의상으로 그렸다. 

인물들은 강력한 대각선 움직임을 형성하며 그리스도를 둘러싼다. 티치아노와 카라바조 이후, 루벤스는 특히 그리스도의 벌거벗은 몸과 상처에 대한 묘사에서 빛과 어둠 사이에 ‘키아로스쿠로’의 강한 대조를 하여, 이 빛이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비추는 것처럼 내부 광원을 만들었다. 

루벤스는 인물들의 손과 팔이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팔다리에 감겨 있는 것처럼 얽히고설키게 했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발굴한 바티칸의 고대 조각상 <라오콘 군상> 을 옆으로 돌려 구도를 잡은 것이다. <십자가를 세움>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렇게 근육질인 줄 몰랐다는 평도 있었다.

라오콘 군상​​, B.C 200년~A.D 70, 대리암,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바티칸 박물관 분관),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패널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배알> 부분, 1614

<십자가에서 내림>의 오른쪽 패널에서 시메온은 감격에 겨워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다. 루벤스는 노인의 눈에 하얀 하이라이트로 예언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기쁨과 하늘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그 앞에서 요셉은 무릎을 꿇고 두 마리의 비둘기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탄생으로 기원전 구약에서 기원후 신약으로 이행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상징한다. ​​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배알> 부분

시메온의 둥근 얼굴에 하얀 수염과 빨간 모자 밑으로 흘러내리는 흰 머리가 매우 풍성하다. 시메온의 왼쪽 두 사람 구경꾼들은 삼면화의 주문자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필자는 처음에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이가 로콕스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메온과 성모 사이에 수도사 복장을 한 이가 삼면화를 주문한 로콕스 시장이다. 화가는 주문해 준 이에 대한 감사 표시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도록 그렸지만, 겸손하고 조촐한 모습이다. 

​루벤스는 절망적이고 침울한 <십자가에서 내림>을 성모 마리아의 평화로운 <방문>과 감격스러운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배알> 사이에 두었다. 루벤스가 이미 완성한 <십자가를 세움>처럼 평화롭고 낙천적인 분위기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에는 좀 더 작은 크기의 ​<십자가에서 내림>이 있다.

샘 딜레만스(Sam Dillemans, 벨기에 1965~), 루벤스에 대한 오마주: 십자가에서 내림, 캔버스에 유채, 2003, 350x250cm,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한편에 오마주한 작품도 있다. 

필자는 루벤스의 역작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림>을 한 공간에서 보았다. <플란더스의 개>에서 주인공인 15살의 넬로가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작품이다.

무역으로 장사에 뛰어난 전통을 가진 플랑드르에서는 성당조차 입장료를 내야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방화범으로 몰린 넬로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지불할 비싼 입장료가 없었다.

집세도 내지 못해 쫓겨나 성당에 몰래 들어와 <십자가에서 내림> 앞에서 함께 우유배달을 하던 반려견 파트라슈와 서로 끌어안고 크리스마스 추위에 얼어 죽었다. 

관광객들의 소란스러움이 잠시 사라지고 정적이 밀려왔다. 수도자들이 묵언수행을 하듯 종교화 앞에 서면 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외로움에 이어 고요함이 찾아온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진리는 지식체계에 난 구멍”이라고 프랑스의 정신분석 학자이며 철학자인 라캉은 말했다. 17세기 초, 이 그림을 통해 루벤스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루벤스의 메세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시대와 종교 그리고 이념의 장막을 걷어내고 편견없이 루벤스가 추구했던 진리에 접근해야 한다. 

그림에 대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괴테는 “우린 아는 것만 볼 수 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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