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꿀 합법화는 대국민 사기극”…판 키운 정부는 외면 [꿀벌을 찾아서①]

“사양꿀 합법화는 대국민 사기극”…판 키운 정부는 외면 [꿀벌을 찾아서①]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과학 근거없는 사양꿀 식품 불인정
사양꿀 제도 도입 후 꿀벌 대량 실종…“밀원 필요 없어져”
사양꿀 혼란 속 소비자 피해 계속…“국가 개입한 사기극”

기사승인 2024-06-07 06:05:01
서울의 한 지하철역 내에서 꿀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당뇨환자인 아버지가 모르고 사양꿀을 사오셨어요.”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이성진(42·가명)씨는 지난 4월 아버지(70)가 들고 온 두 통의 꿀단지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혈당 관리를 위해 설탕을 먹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꿀은 당뇨환자도 섭취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거리에서 파는 꿀을 사온 것이다. 그러나 이 씨의 아버지가 구매한 것은 설탕 성분이 든 사양꿀이었다. 아버지는 천연꿀과 사양꿀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고, 똑같은 꿀이라는 생각에 가격이 싼 사양꿀을 구매한 것이다. 이 씨는 취재진에게 “마트에 대놓고 팔고 있지만 사양꿀의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토로했다.

정부가 사양꿀을 식품으로 인정하며 그 여파가 자연과 유통 생태계에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양(飼養)꿀은 채밀기가 아닌 시기 벌에게 설탕물을 먹이고 길러 생산한 꿀이다. 꿀이라고 썼지만 과학적으로는 꿀이 아니다. 한상미 한국양봉학회장은 “꿀의 정의는 자연물에서 나온 당원을 꿀벌이 먹고 분비해 벌집에 모아놓은 것”이라며 “사양꿀은 설탕물을 먹여 만든 인위적인 것으로 과학적으로는 꿀로 볼 수 없는 물질”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사양꿀을 식품 유형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CODEX는 꿀을 ‘꿀벌이 식물의 꿀 등을 먹고 생성하는 천연 단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벌에게 설탕을 먹여 만든 꿀의 경우 ‘꿀 불순물(Honey Adulterants)’ 등으로 표현하며 이를 유통할 경우 식품에 ‘경제적 동기가 있는 불순물(EMA)’을 넣은 식품 사기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다.

서울 도심 내 핀 꽃에서 꿀벌이 꽃꿀을 먹고 있다. 사진=김건주 기자

유럽연합(EU)은 ‘벌이 굶어 죽을 가능성이 있을 때 설탕시럽을 먹이로 줄 수 있지만, 벌에게 설탕 시럽을 집중적으로 먹이는 것은 꿀의 법적 정의와 충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벌이 꽃 등 ‘자연물’을 먹고 생산한 꿀이 아니면 불순물로 간주한다. 이를 수입·유통·판매할 시 캐나다식품안전법(SFCA) 등의 위반으로 보고 제품 폐기나 행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사양꿀’을 진짜 꿀이 아니고 혼합되거나 혼탁한 벌꿀로 본다”며 “설탕을 먹여 만들어내는 벌꿀 자체가 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측면에서 중대한 범죄 행위로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도 사양꿀 생산이 꿀벌 실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관로 한봉협회중앙회 회장은 “사양꿀 생산이 늘면서 벌꿀 실종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꿀벌이 먹을 꿀을 다 가져가고 영양소가 없는 설탕만 먹이는 것은 (꿀벌에게) 치명적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양꿀’을 거리에서, 혹은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걸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6년 ‘사양벌꿀’ 유형을 신설했다. 한반도의 뚜렷한 사계절로 인해 겨울철 꿀벌이 먹을 게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생존을 위해 설탕을 먹여 키우는 것이 불가피한 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식품으로 인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식약처 답변과 달리 다음해인 2017년 1월 1일, 사양꿀 정의규정 개정 시 ‘꿀벌의 생존을 위해’라는 문구는 제외됐다. 문제는 곧바로 나타났다. 정부가 사양꿀을 식품으로 인정하며 판을 깔아주자 사양꿀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사양꿀 업자들은 무밀기에 벌이 죽지 말라고 설탕물을 주는 게 아니고 ‘설탕꿀’을 만들기 위해 호스로 자동 배급한다”며 “이를 반복해 벌이 중노동을 하고 밀원에서 나오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단명하는 일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양봉업자들이 사양꿀을 생산하는 이유는 생산량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꿀벌을 자연에 풀어 놓는 것보다 사료를 제공해 만들어내는 게 생산량도 높고 단가도 낮아 소위 유혹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식약처의 2018~2022년 ‘식품 및 식품첨가물 생산실적’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천연꿀과 사양꿀 생산량은 각각 4638톤, 238톤이었다. 그러나 2021년에는 사양꿀(6852톤)이 천연꿀(5217톤) 생산량을 뛰어넘기도 했다.

지난 5일 경기도 의왕시에서 양봉원을 운영하는 장성범(57) 한국양봉협회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꿀벌의 집단 실종 등으로 벌통이 180여개에서 30개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꿀벌이 붙은 벌집. 사진=김건주 기자 

최근 꿀벌이 대량 실종·폐사되는 것도 사양꿀 제도를 도입한 이후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 이사장은 “2020년 8월 시행된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사양꿀’이 제도화되며 결과적으로 벌꿀 생산을 위한 밀원이 필요 없어졌다”며 “설탕물을 언제 어디서든 먹여주니 화분매개가 줄고 농작물 수분도 제대로 되지 않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식약처는 소비자들이 사양꿀을 구분할 수 있도록 제품 주표시면에 12포인트 이상의 크기로 ‘이 제품은 꿀벌이 설탕을 먹고 저장해 생산한 사양벌꿀입니다’라는 문구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의 경우 이를 구분하기 어렵고 여전히 사양꿀과 천연꿀을 잘 알지 못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혈당 관리가 필요한 고연령층 당뇨환자들이 이를 잘 모르고 사양꿀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꿀 유통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결 자연꿀 동호회장은 “‘사양꿀’은 꿀로 표시해서도, 꿀병에 담아서도 안 된다”며 “꿀로 둔갑시킨 것은 사기행위다. 최소한 사양꿀을 ‘설탕꿀’로 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꿀의 생산·정책 등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설탕꿀’로 명칭을 바꿨을 때 판매가 되지 않아 명칭을 바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에서 대체당원, 제과원료 등으로 유통되는 물량이 많아 산업적 측면에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양꿀이 유통되도록 만든 정부가 ‘유통량이 많아 명칭을 바꾸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송 이사장은 “사양꿀을 제도화시킨 것은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양꿀 업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설탕꿀을 생산해 벌꿀인 것처럼 속여 팔도록 한 ‘국가가 개입된 대형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한국에서만 꿀로 취급하는 사양벌꿀 [사양꿀의 불편한 진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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