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하다 이젠 조직문화까지 감독한다는 금감원

하다하다 이젠 조직문화까지 감독한다는 금감원

갈수록 증가하는 금융권 횡령사고
내부통제 혁신방안 시행에도…2달 뒤 우리은행 직원 횡령
책무구조도 준비 바쁜데 고민 늘어
“실효성 의문…획일적 조직문화 바람직하지 않아” 지적도

기사승인 2024-06-25 06:21:02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국내은행 은행장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금융감독원

근절은 커녕 갈수록 늘어나는 횡령 사고에 금융권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국은 조직 문화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책무구조도 시행을 앞둔 금융권에서는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잇따른 횡령, 배임 등 금융사고와 관련해 조직문화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새 감독 수단을 마련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 중이다. 제도 개선이나 사후 제재 강화만으로는 금융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20개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과도한 성과주의, 중장기적 리스크에 대한 검토 미비, ‘모 아니면 도’ 식 운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서 “국제적인 논의와 우리나라 고유의 상황을 반영해 은행권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해외 사례도 들었다. 네덜란드 금융당국은 심리·행동 분석 전문가가 있는 전담조직을 운영한다. 호주 금융당국은 임직원 설문조사로 조직문화 강·약점을 파악하는 방법 등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 외치는데…금융사고 줄이기 쉽지 않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6년 반 동안 발생한 횡령액은 총 1804억 2740만원으로 집계됐다.

횡령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56억6780만원 △2019년 84억5870만원 △2020년 20억8290만원 △2021년 156억9460만원 △2022년 827억5620만원 △2023년 642억6070만원으로 늘었다. 업권별로 횡령 규모는 은행이 85%(1533억2800만원)로 압도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2년 11월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마련한 뒤 내부통제 강화를 집중적으로 주문해 왔다. 내부통제 혁신 방안은 은행 준범 감시부서 인력 및 전문성 확충, 동일 부서 장기 근무자 비율 제한, 사고 예방조치 운영기준 재설계 등이 골자다.

하지만 이 역시 횡령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단적인 예가 최근 우리은행 100억원 횡령사고다. 우리은행 공시에 따르면 횡령 직원이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였다. 당국이 혁신 방안을 발표한지 10개월 만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지주 차원에서 지난해 7월 승진 전 내부통제 업무 필수화, 내부통제 전담 인력 배치 등 자체 내부통제 혁신방안까지 내놓았지만 사고 예방에 실패했다. 

그나마 내달 3일부터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인 책무구조도가 시행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시 관련 임원 책임 범위를 명시한 것이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유예기간 6개월 후인 내년 1월3일까지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내야 한다.

지주사들은 분주하게 TF팀 등을 꾸려 책무구조도를 준비해왔다. 신한금융을 시작으로 KB금융, 우리금융은 최근 지주사와 은행의 책무구조도 초안 작성을 마무리했다. 하나금융, 농협금융은 지주사 책무구조도 초안까지 완성한 단계다. 지주사들은 연말쯤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취지엔 공감하지만…“그런다고 근절되지 않아”

금융사 관계자들은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조직문화를 바꾼다고 횡령사고가 근절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조직문화를 감독해서 금융사고가 근절될 수 있다면 하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직원 일탈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조직문화에 금감원이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관계자는 “회사마다 배경과 뿌리가 다 다르다. 각자의 조직문화가 다 다르기에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것”이라며 “금감원이 획일적인 조직문화를 강요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도 “당국으로썬 금융권에 퍼진 성과 중심 문화가 내부통제 미흡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도 “성과체계 점검이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금융사고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조직 문화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광범위하다 보니 금감원이 추가적으로 개선안을 요구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감독기관 권한 바깥까지 컨트롤하려 하는 것 같다”면서 “금감원에서 최근 책무구조도 등 금융사에 요구하는 게 많아지며 자문을 해주는 컨설팅 업체나 법무법인만 노났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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