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새로운 수장으로 지명됐다. 여야의 강한 충돌이 예상돼 방송·통신 현안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전 사장을 신임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후보자는 MBC 기자 출신이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취재로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 타이틀을 얻었다. 지난 2002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공습을 현장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MBC 홍보국장과 워싱턴지사장, 대전MBC 사장 등을 지냈다.
다만 정치적 행보로 인한 논란도 거세다. 야권에서는 이 후보자를 MBC 민영화 추진과 노조 불법사찰 등 갈등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12년 김재철 당시 MBC 사장에 반대하는 파업을 주도한 측에 의해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여당 몫의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추천됐다가 더불어민주당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 자리에 오르면 공영방송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후보 지명 직후 공영방송에 대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이 후보자는 “공영방송과 공영언론의 다수 구성원은 민주노총 조직원”이라며 “공영방송과 공영언론이 정치권력과 상업 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노동 권력과 노동 단체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임기가 만료되는 MBC, KBS, EBS 이사진에 대한 ‘물갈이’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 관련 공영방송의 보도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자는 “‘바이든 날리면’ 같은 보도는 최소한의 보도 준칙도 무시한 것”이라며 “음성이 100% 정확히 들리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이야기했다. 청담동 술자리 보도와 김만배·신학림 관련 보도도 부적절한 예로 들었다. 그는 “방통위원장에 대해 탄핵을 한 정당에서는 현 정부의 방송 장악을 막기 위해 발의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가짜 허위 기사는 모두 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나왔다”며 “정부가 방송 장악을 했다면 이런 보도가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방송장악을 위한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여야의 강한 대치가 예상되는 가운데, 방통위 현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 보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방통위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산적해 있다. 방송법 개정과 국내 OTT 차별 개선 및 정비, 구글 인앱 결제 과징금,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조사, 유료방송 콘텐츠 사용료 대가산정 제도 개선 등이다.
특히 방송법 개정과 OTT 차별 개선 및 정비 등은 전전임 위원장인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때부터 추진돼 왔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도 방송·미디어와 OTT를 아우르는 통합미디어법 추진 의사를 밝혔으나 이루지 못하고 직을 내려놨다. 해외에서는 디지털과 미디어 관련 법을 빠르게 개정 중인데 우리나라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인다.
전문가들은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해 5인 체제의 방통위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봤다. 한석현 YMCA 시민중계실장은 “2인 체제로 방통위가 운영된다면 (김 위원장 탄핵 사유가 된)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며 “방통위는 기본적으로 ‘합의제’ 기구이지만 2인 체제에서는 토론이 원활히 이뤄질 수 없다. 안건에 대한 문제점이 다듬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도 “방송산업은 현재 굉장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방송을 보호하거나 진흥할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며 “방통위가 빨리 5인 체제로 재정비를 해야 한다. 야당의 비판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