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ACOA,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자녀인가요 [쿠키청년기자단]

당신도 ACOA,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자녀인가요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4-07-22 15:55:45
알코올 의존증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청년이 된 후에도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다. 사진=최세희 쿠키청년기자

#술을 좋아하지만 2년째 절주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곤 했는데, 이런 성향이 유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전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대화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취했을 때 했던 말들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에 밖에선 더 밝은 척 행동합니다.

#인간관계에 큰 부담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저 사람 언제 변할지 모른다’, ‘저 사람의 모습은 진심이 아닐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술을 마시면 가족에게 폭언을 내뱉곤 하셨습니다.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위 사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인이 된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자녀’, ACOA(Adult Children of Alcoholics)의 경험이라는 점이다. ACOA는 지난 1970년대 중반 미국 알코올 의존증 치료 과정에서 생긴 용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클라우디아 블랙(Claudia Black)과 재닛 와이츠(Janet G. Woititz)의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미국 베로나의 상담훈련원장이었던 Janet G. Woititz가 밝힌 ACOA의 특징. 사진= Janet G. Woititz, ‘Adult Children of Alcoholics’

재닛 와이츠는 저서 ‘성인이 된 알코올 중독자의 아이들(Adult Children of Alcoholics)’을 통해 ACOA의 특징을 13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ACOA가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변화에 과민 반응한다 △충동적이다 등의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ACOA가 되는 원인은 아동기 부정적 경험 때문이다. 어릴 적 겪은 가정폭력이나 방임, 갈등 등이 영향을 준다. 지난 4월부터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알코올 중독자 가족입니다’를 연재 중인 우정숙 그리심마음상담센터 센터장은 “많은 내담자의 부모가 술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내담자의 우울, 불안, 강박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가족의 알코올 의존증과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알코올 의존증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정부와 시설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진=최세희 쿠키청년기자

ACOA 청년은 유전이나 환경 등의 이유 탓에 알코올 의존에 취약하다. 김혜인(25・여・가명)씨는 반주가 일상인 가정에서 자랐다. 저녁 밥상에서 취한 김씨의 부모님은 자주 언성을 높였다. 김씨 역시 성인이 된 후 매일 조금씩이라도 술을 마셨다. 어느 순간, 술에 취하면 욕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음주를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그만 마셔야겠단 생각이 들어도 계속 잔을 채웠다”며 “그러다 내 모습에서 부모님이 겹쳐 보인 순간 절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니엘 한국중독연구재단 카프 센터장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 치료를 시작했지만, 재발이 잦은 친구가 있었다”며 “알고 보니 어려서부터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가정의 자녀들은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중독의 굴레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부모의 폭력에 노출됐던 ACOA 청년들은 트라우마에 고통받기도 한다. 박서윤(22・여・가명)씨는 어릴 적 경험한 아버지의 취중 폭언으로 일상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술에 취할 때마다 딸의 방문을 열어젖히고 욕설이나 비난을 퍼부었다. 박씨는 “아버지가 제게 ‘공부 못하면 술집에 나가라’고 했던 말이 두고두고 떠오른다”며 “성인이 된 지금도 누군가 제가 있는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광호씨가 지난 2009년도에 작성한 일기. 이광호 브런치 스토리

이광호(남)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씨의 두려움이 ‘문’이라면, 이씨의 두려움은 ‘수화기’다. 이씨는 자신의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심장이 떨리고 손이 차가워진다’고 밝혔다. 매일 저녁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으면 아버지가 화를 냈고, 받지 않으면 어머니가 불안해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와 불안해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린 이씨가 기댈 곳은 없었다.

현재 국내에서 ACOA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비정부 단체인 ‘한국알아넌가족연합회’ 정도다. 반면 ACOA의 개념이 탄생한 미국은 이를 드러내고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가족의 약물 사용이나 중독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긴급 핫라인이 있으며, ACOA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알코올 중독자 및 기능 장애 가족의 성인 자녀(Adult Children of Alcoholics & Dysfunctional Families)’가 있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A.A의 정양재 사무국장은 ACOA 청년 문제에 대해 "민간 지원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에서 중독 회복 시설 확충 및 가족에 대한 지원과 상담이 이뤄져야한다"고 밝혔다. 다니엘 센터장 역시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며, 심리적 지원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자원과의 연계가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ACOA 청년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촉구했다.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darang1220@naver.com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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