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인투자자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주식 투자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증시 거래대금이 순매도인 반면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업계는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선호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한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올해 연초 이후 지난 6월말까지 국내 증시에서 7조3798억6100만원을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장지수펀드(ETF)와 주식워런트증권(ELW), 상장지수증권(ETN) 등은 제외한 기준이다. 연기금 등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도 12조5104억6400만원을 순매도했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향한 곳은 글로벌 시장이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증시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지난 6월말 기준 1273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말 기록된 1041억9000만달러 대비 22.2% 증가한 수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보관금액은 예탁원을 통해 거래한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총잔액을 뜻한다.
외화증권 결제금액도 2552억8000만달러로 지난해말 1939억7000만달러 대비 31.6% 늘어났다. 결제금액은 지난 2022년 하반기 1675억7000만달러에서 2023년 상반기 1886억8000만달러, 2023년 하반기 1939억7000만달러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장별로는 미국이 전체 보관금액의 73.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외화주식 보관금액 상위 10개 종목도 모두 미국 주식으로 구성됐다. 상위 종목이 차지하는 금액은 전체 외화주식 보관금액인 946억4000만달러의 49%를 차지한다. 6월말 기준 보관금액 1위는 130억9800만달러를 기록한 엔비디아로 나타났다. 이어 테슬라(118억7300만달러), 애플(47억1000만달러), 마이크로소프트(38억7800만달러)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증시 매력도가 미국 증시 대비 떨어진 영향으로 해석된다. 연초 이후 직전 거래일까지 코스피 지수와 뉴욕증시 3대 주가지수의 수익률이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서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 1월2일 이후 25일(현지시간)까지 4742.83에서 13.83% 치솟은 5399.22를 기록했다.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기술주 중심 나스닥지수도 각각 5.88%, 16.36% 오른 3만9935.07, 1만7181.72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연초 2669.81에서 전날 2731.90으로 2.32% 상승에 그쳤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가 미비한 점도 배경 중 하나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상장사들의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경제 선순환 정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자발적 참여에 중점을 둔 만큼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부족하단 지적으로 추진 동력을 일부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국내 증시로 ‘머니무브’를 유도하기 위한 밸류업 혜택을 강화했다. 구체적으로 △주주환원 확대 기업 대상 법인세 세액공제 △상장기업·개인주주 현금배당 일부 분리과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등이다.
다만 정부의 대책이 개인투자자가 발걸음을 되돌릴지는 불확실하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부는 연내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상속세 등 증여세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기업가치 제고 세제 대책을 추진할 예정이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회에서 통과돼야 하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업계는 당분간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선호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웃돈 2.8%로 대폭 개선됐으나, 한국은 -0.2%로 역성장한 모습을 보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시장을 향한 자금 쏠림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나스닥이 조정되는 국면이지만 기본적으로 주요 빅테크 업체들의 실적은 상당히 좋게 나오고 있어 선호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로 돌아오기 위해선 환율 하락 움직임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하락하고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 증시에서 돈을 번 투자자들이 환차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