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를 위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통법에 대한 평가와 폐지 이후 대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단통법 폐지 및 바람직한 가계통신비 저감 정책 마련 토론회’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김현·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했다.
이날 발제는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와 정광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통신정책연구실장이 맡았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 이후 논의돼야 할 과제 및 대안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통법 폐지 이후 △마케팅 경쟁 강화로 인한 소비자 후생 감소 △정보 취약계층에 대한 가격차별 심화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 위축 △대리점과 판매점에 대한 규제 약화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에 대한 의견 대립이 여전히 심각하다. 폐지 효과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단통법 폐지라는 화두가 주어졌더라도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통법 폐지 이후 대안으로는 이동통신서비스와 단말기 유통을 분리하는 완전자급제, 이동통신사의 재위탁을 받은 판매점에 한해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절충형 완전자급제,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지원금을 각각 구분해 공시하는 분리공시, 보조금지급 금지, 전기통신사업자법 개정 등 다양한 방안이 언급됐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통신 이용자를 보호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목표 아래에서 무엇을 달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단말기 제조사에 대한 규제 및 유인책을 수립하고, 유예기간을 부여해야 한다. 이용자 보호 및 알뜰폰 사업자·소형 유통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실장은 단통법 도입 이후 통신사장의 변화를 훑으며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제언했다. 지난 2009년부터 2023년도 통신시장경쟁상황 평가를 살펴보면 단통법 도입 이후 번호이동 가입자는 줄고 기기변경 가입자는 증가했다. 선택약정 할인 수혜자도 연도별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자급제 단말기의 이용도 크게 늘었다.
정 연구실장은 “향후 시장의 자율적 경쟁을 통해 통신비 인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금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용자 차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며 선택약정 할인제도는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신사와 알뜰폰 사업자, 제조사, 유통사,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토론도 이어졌다. 좌장은 이경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통신사에서는 단통법 폐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폐지 방안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송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실장은 “단통법이 폐지될 경우, 법 시행 이전 나타났던 문제점 발생이 충분히 예상된다”며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위한 단통법 폐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통신사만의 노력으로는 단말기·통신비 인하가 어렵다는 점도 언급됐다. 송 실장은 “이동통신사들은 국제적인 요금 상승 기조 속에서도 2~3만원대의 저가 요금제를 출시했다”면서 “단통법 폐지를 통해 보조금 경쟁 촉진에도 기여할 수 있으나 단말기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는 상황이다. 한정된 지원금만으로는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저렴한 단말기 구매가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대리점·판매점 등 유통사 측에서는 단통법 시행으로 겪게 된 어려움과 ‘성지’ 등 판매 채널이 음성화되는 점을 지적했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시장의 번호이동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유통 직영점·자회사도 퇴점 및 축소하는 추세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유통점 간 장려금 차별도 큰 문제”라며 “법을 지키려는 매장이 규제 대상이 되고 불법을 주력으로 하는 성지는 규제 사각지대에서 불법을 판치는 형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뜰폰 업계에서는 통신서비스와 유통의 분리가 필요하다며 단통법 폐지 대안으로 ‘완전자급제’ 시행을 지지했다. 김형진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장은 “통신사는 통신 서비스만 하고 유통은 유통기업에서 하면 된다”면서 “통신비가 문제라고 하지만 통신비가 오른 게 아니라 단말기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사는 단말기 사양 경쟁이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가격을 낮추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윤남호 삼성전자 상무는 “10년 전보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많이 상승했다. 제품 가격을 낮추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플래그십 제품을 낼 가장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대안으로 제시된 완전자급제와 절충형 완전자급제에 대해서는 “제도를 변화시키더라도 통신비·단말기 가격 인하 등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제조사 입장에서도 판매점을 대상으로 직접 거래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라고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단통법 폐지를 바라봐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이동통신시장에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가이드라인과 합의가 필요하다”며 “데이터 중심으로 바뀐 환경에 맞는 정책을 가계 통신비 저감정책으로 마련해야 한다. 시장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이 나오면 시장 왜곡 개선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업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렴해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주연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시장조사과장은 “폐지가 목적이 아닌 이용자 이익 증대가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면서 “유통업계와 시민단체, 제조업계 등의 의견을 많이 듣고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심주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이용제도과장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지속 청취하고 국회의 입법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알뜰폰 경쟁력 강화와 중고폰 거래 활성화, 중저가폰 출시 유도 등 다양한 정책을 병행해 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