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월드컵 못 나가는 거 아니죠? [취재진담]

설마 월드컵 못 나가는 거 아니죠?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4-09-06 13:55:06

첫 발부터 단단히 꼬였다. 절차상 심각한 하자로 팬들의 지지도 못 받는 상황. 경기력이라도 좋았어야 하나, 홈에서 처참한 모습만 드러냈다.

지난 5일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맞붙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야유와 함성이 오가는 기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나오면 ‘우~’를 외치던 관중들은 손흥민이 등장할 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특혜, 낙하산 논란을 무시한 채 감독직에 오른 홍 감독을 향한 질타인 셈이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에게 전하는 날 선 목소리도 들렸다. 이날 응원 중 팬들이 가장 호흡을 잘 맞춘 순간은 “정몽규 나가”를 외칠 때다. 한국 응원석 일부에서 이를 외치면 반대에 있는 팬들까지 곧바로 비판 행렬에 참여했다. ‘현대 쩌리’, ‘일진놀이 몽규, 협회는 삼류’ 걸개도 걸렸다. 홍명보, 정몽규 두 인물에 대한 야유 탓에 홈 경기인지 원정 경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처참한 경기력이 야유에 힘을 실었다.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이기에 대승이 당연한 듯 보였으나 한국 선수들은 상대 강한 압박에 고전했다. 전술 부재 영향인지는 몰라도 수비 밸런스는 붕괴됐으며, 골 결정력은 크게 흔들렸다. 96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이 정도 경기력이면 월드컵 진출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월드컵 탈락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이 속한 B조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팀이 중동 국가로 구성됐다. 이라크, 요르단 등 기존 중동 강호들과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오만이 있다. 쿠웨이트와 팔레스타인이 비교적 약팀으로 꼽히는데, 홍명보호는 팔레스타인과 비겼다. 그것도 6만 관중(5만9579명)이 들어선 홈에서. 

한국 아시아 경쟁력은 떨어진 지 오래다. 이미 지난 2023 아시안컵 때 4강에서 요르단에 역사상 첫 패를 당하기도 했다. 중동 국가들에 일격을 맞아 월드컵 탈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암흑기에 빠졌다. 파울루 벤투 체제에서 4년간 어렵게 만든 조직적인 축구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부임 후 완전히 무너졌다. 다시 전술을 체계적으로 다져야 할 때지만, 홍 감독이 적임자인지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라볼피아나’ 등 전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사령탑에 올랐으나, 곧바로 유럽으로 향해 전술 코치를 구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다가왔다.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는 “자기 축구 철학을 구현해야 하는 게 감독이다. 하지만 바로 외국인 코치를 물색하러 갔다는 건 조금 의구심이 든다”며 “KFA와 홍명보 감독이 너무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라고 비판했다. 

한국이 팔레스타인과 비긴 날, 이웃 나라이자 라이벌인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7-0 대승을 거뒀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아랍에미리트도 조직적인 축구를 앞세워 직전 아시안컵 우승팀인 카타르를 3-1로 잡아냈다. 타국이 발전할 동안 한국 축구가 한 것은 무엇인가. 클린스만·홍명보 졸속 선임, 정몽규 4선 도전, 티켓 값 올리기. 한국 축구는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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