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받으러 매일 아침 오픈런, 이게 맞아요? [취재진담]

대출 받으러 매일 아침 오픈런, 이게 맞아요? [취재진담]

3년 만에 다시 소환된 대출 난민
자고 나면 바뀌는 대출규제…혼란 가중
결국 “은행이 자율적으로 관리”
대출 조이기로 집값 멈출 수 있나

기사승인 2024-09-11 06:31:03
쿠키뉴스 자료사진

가계대출과의 싸움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백기를 들었다.

이복현 원장은 10일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에 관해 세밀하게 메시지를 내지 못해 국민과 은행, 은행 창구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분들에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연일 은행을 질책하던 행보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이 원장은 그러면서 은행들이 적절한 자율 심사로 대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6일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가계부채 브리핑에서 밝힌 기조와 같다. 사전 예고 없이 열린 브리핑이었다. 같은날 오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 위원장, 일명 F4가 모여 가계부채 논의를 한 뒤였다. 금융위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등판했기에 그 메시지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브리핑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금융위 입장은 한 줄로 ‘은행이 알아서 가계부채가 늘지 않게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창구에서 차주들을 직접 만나는 은행들이 사정을 가장 잘 알 테니 실수요자도 은행이 알아서 정할 일이라고 했다. 당국에서 생각하는 실수요자 정의를 묻는 말에 “실수요 정의라는 게 딱 잡아지겠나.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 실수요자”라는 게 김 위원장의 답이었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실수요자 보호 방법을 강구하겠다던 당국의 그간 발언은 그럼 뭐였나. 

최근 정부의 가계부채 관련 행보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당국은 지난 7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강화된 대출규제(스트레스 DSR 2단계)를 2달 뒤로 미뤘다. 시행 일주일 전 돌연 내린 결정이었다. 집값 띄우기를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그런데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당국은 은행을 압박했다. 이는 2달간 20차례 넘는 대출금리 인상 릴레이를 초래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복현 금감원장은 누가 대출금리 올리라고 했나, 라며 은행을 꾸짖었다. 1주택자 전세자금대출에 이어 갈아타기용 주담대까지 막는 등 전방위 대출 조이기가 시작됐다.

그 결과는 어땠나.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보다 9조6259억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조9115억원 늘었다. 2016년 1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증가 폭이다. 부동산 시장도 심상치 않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이뤄진 서울 아파트 매매 금액은 지난해 한 해 거래총액을 이미 넘겼다. 또 서울 강남3구 아파트를 비롯해 서울의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대출 시장은 혼란 그 자체다. 지난 2021년 등장한 신조어 ‘대출 난민’이 재소환됐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서는 각각 오전 6시, 9시 열리는 주담대 접수를 하려 ‘오픈런’ 행렬이 시작된 지 오래다. 주담대 신청에 성공했다며 서로 꿀팁과 후기도 공유한다.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갑자기 은행들이 잔금대출을 중단해 날벼락 맞은 주민도 있다. 은행이 주담대와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MCI, MCG) 가입을 제한하는 바람에 대출 한도가 최대 5500만원이 줄어든 이도 있다. 빈 5500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일반 서민에게는 하늘이 노래질 일이다. 

풍선효과는 이미 현실이다. 대출 구멍을 찾아 차주들은 제2금융으로 몰려가고 있다. 삼성생명이 지난 3일부터 유주택자의 주택 추가 구입을 위한 주담대를 차단한 데 이어 한화생명은 지난 5일 주담대 신청 접수를 마감했다. 교보생명도 주담대 규제를 검토 중이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나흘간 5000억원 가까이 튀어 올랐다. 

은행 자율규제로 가닥이 잡혔다고 대출 시장 혼란이 해소된 것도 아니다. 은행마다 천차만별인 대출 규제와 실수요자 범위를 일일이 알아보고 혼인증명서, 임신진단서, 매도계약서 등 각종 서류를 받아 씨름하는 건 오롯이 차주와 은행 창구 몫으로 남겨졌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애초부터 대출 조이기로 집값 급등을 막는다는 생각이 안일했던 건 아닐까.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초 내놓은 공급 대책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9일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와 같은 집값 상승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박 장관의 말이 틀리지 않길, 정말 바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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