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은 육아휴직 이용률은 최하위…“탄력운영 환경 먼저” [일·가정 양립사회①]

수준 높은 육아휴직 이용률은 최하위…“탄력운영 환경 먼저” [일·가정 양립사회①]

현 육아휴직 제도, 비탄력 운영으로 효과 미미
단축 근무 활용 자유로워야 경력 단절 불안 해소
“정부보다 기업이 가족 친화 정책 적극적으로 펼쳐야”

기사승인 2024-10-07 06:00:04
편집자주
저출산의 영향으로 산업계의 성장률도 함께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원인도, 그 피해의 주인도 기업입니다. 한국사회의 일과 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구조적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쿠키뉴스DB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제도는 경직된 상태로 비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력 단절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기보다 단축근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 보장 수준은 이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상위권에 속하지만, 사용률이 최하위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이 1명당 부모가 각각 1년씩 쓸 수 있던 육아휴직 기간이 내년부터 각각 1년 6개월씩 총 3년으로 늘어난다. 육아휴직을 다 쓰지 못한다면 남은 기간의 2배를 육아기 단축근무에 활용할 수 있다.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는 부모 근로자들이 자녀 양육을 위해 주당 15시간~35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 교수는 “한국의 육아휴직은 경력 단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함께 따라온다. 현 정부가 모성보호 3법을 통해 부모의 육아휴직 참여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보장 수준이 높은 데도 이용을 주저하는 이유는 기업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장려하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최민희(28·가명)씨는 단축근무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라도 육아휴직에 대한 기업 내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현재 관리자급 이상의 임직원 중 과거 육아휴직을 쓴 여자 선배들은 거의 전무하다. 좋은 정책들은 늘어났지만, 경력 단절과 승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사용해야 하는 이유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 시간 단축 근무 역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근로 시간 단축 제도 역시 눈치 보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퇴근 시간을 지나 근무하는 선배들이 대부분이라 퇴근 시간을 딱 맞춰 나가는 것이 오히려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아빠와 등원하는 어린이. 연합뉴스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박민환(34·가명)씨는 기업에서도 육아휴직 제도를 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누군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다른 팀원들이 추가로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남자들의 경우 고과권자들이 성과 평가 시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더 고생한 직원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정부보다 기업이 나서서 가족 친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육아휴직의 사회적 책임 운영을 위해 경제계에서 가족 친화 경영을 확대하는 방안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는 원하지만, 기업이 원하지 않는 육아휴직·단축근무는 곧 경력 단절로 연결된다. 벨기에, 덴마크 기업들은 유연근무를 활용해 부모가 스스로 일과 삶을 구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업이 나서서 가족 친화 정책을 펼쳐야 초저출생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사회의 생산 구조를 살펴보면, 전문 노동력 중심이 아니다. 유능한 전문 노동력과 원천 기술을 습득해 회사와 직원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라면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경력 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독일을 언급하며 “육아휴직 제도가 활성화된 해외 기업처럼 한 사람을 훈련시키는데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이면 직원과 회사 모두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구조가 된다. 가족 친화 정책은 곧 전문 노동력을 중심으로 한 경영에서 시작되고, 육아휴직 제도에도 영향을 준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기업이 가족 친화 경영을 확대할 때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대다. 기업, 정부가, 경제계가 함께 앞장서야 하는 갈림길에 있다”고 부연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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