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한계 온 한국산업…선진 저출산 해법은 ‘파격’ [기업·가족 양립사회③]

성장 한계 온 한국산업…선진 저출산 해법은 ‘파격’ [기업·가족 양립사회③]

- 獨 도이치텔레콤, 2010년부터 여성 할당제 도입
- ‘연결 유지’로 복귀 적응 도와…출산율 2.0명대
- 日 이토추상사 ‘야근금지’ 등 기업 파격 제도 ‘효과’

기사승인 2024-10-11 06:00:06
독일 본 소재 도이치텔레콤 본사. 도이치텔레콤

2018년 1명대가 붕괴된 이후 지난해 0.72명까지 떨어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한국 산업의 가장 큰 고민은 글로벌 정세도, 신성장 동력 확보도 아닌 미래에 일할 사람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2004년 주5일제(40시간) 도입이 시행된 지 올해로 만 20년째.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했던 과거의 산업·노동 구조는 점차 개선돼가고 있지만, 각종 통계로 미루어볼 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찌감치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한 선진국 등 해외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한 발 앞선 제도 도입, 기업 구성원 만족·출산율↑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994년 0.77명을 기록하는 등 1명대 안팎을 맴돌았지만 2015년부터 2021년까지 1.5명대를 꾸준히 유지하며 인구 부양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입법활동과 관련 제도들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저출산 극복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주효했다. 독일 최대 이동통신사 ‘도이치텔레콤(DT)’이 대표적 예다.

DT는 201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 DAX 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처음으로 여성 할당제를 실시, 당시 제로에 가까웠던 여성 비율을 42.4%(독일 지사 내 관리직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성별 다양성 확보 정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단순히 여성 직원만 늘린 게 아니다. 직장 유치원 도입과 함께 자유로운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오랜 기간 출산휴가를 다녀온 직원의 회사 적응을 위해 ‘Stay in Contact T(스테이 인 콘택트 T, 연결 유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출산휴가 중인 여성 직원은 사내 담당자와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업무 관련 내용을 듣고, 직원이 원하면 팀 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다. 회사의 행사에 단기 인력이 필요하면 아르바이트 형태로 짧게 근로할 수도 있다. 출산휴가 중인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게 아닌 회사와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복귀 시 업무 적응의 난이도를 낮춰주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토대로 출산휴가 중인 여성 직원은 자신의 판단 하에 관리직 등 더 높은 직책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승진을 하게 될 경우 복직 시 승진한 위치에서 근로하게 된다. 직원이 회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사내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 ‘경력 단절’을 방지한 성과인 셈이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픽사베이 

또, 육아 관련 휴가는 의무적으로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DT에 따르면 남성 직원은 평균 2~7개월, 여성 직원은 6~12개월가량 육아휴직을 다녀온다. 직원이 원하는 시간에 일시적으로 가정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자녀 생후 3년까지 부모가 육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개선한 독일 정부의 영향도 있다. 독일은 육아휴직 3년 중 12개월 동안 부모수당을 지급하고,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2개월을 추가해 총 14개월까지 가능하다.

선제적으로 출산·육아 복지를 적극 수용하고 개선을 거듭한 결과, DT는 기업 전체 출산율 2.0명 이상을 유지하며 독일 내에서도 출산·육아 선진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초고령화 사회가 현실이 된 일본에선 일본 5대 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사례가 주목받는다. 10여 년 전인 2013년부터 ‘아침형 근무’ 제도를 도입한 이토추상사는 오전 5~8시 출근자에게 야근수당과 같은 1.5배 수당을 지급하고, 주2회 재택근무 등을 실시해 왔다. 아침근무 시 당연히 아침식사를 제공하며 아이들은 사내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 동시에 오후 8~10시 근무는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언뜻 보기엔 ‘조삼모사’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 이 제도로 인해 2010년 0.6명까지 떨어졌던 기업 전체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9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회사에 따르면, 2010년도를 1이라는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해 노동생산성(연결순이익/단독 종업원 수)은 5.22로 5.2배 향상됐으며, 이로 인해 기업 비용도 6%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이토추상사는 2030년까지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정책 하에 올 4월 여성 임원 5명을 신규 채용했다. 지난해 여성 고위직이 1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큰 폭의 채용 규모다. 2021년 35명에 그쳤던 여성 관리자(과장·부장급)는 올해 61명까지 늘었다. 2021년 대비 74% 오른 수치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셔터스톡 

이밖에 일본 대표기업 캐논은 지난 2009년부터 직원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조기 퇴근하는 제도를 도입해 당시 기준 파격적인 제도와 후속 조치들을 시행해 왔으며,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2020년 말 이미 87%를 넘긴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은 지난해 7월 ‘육아휴직 응원수당’ 제도를 만들어 최대 10만엔(약 100만원)을 지급해오고 있다. 지급 대상이 육아 휴직자가 아닌 휴직자의 업무를 대신하는 직원으로,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육아·개호휴업법 개정 등을 통해 남성 직원 출산휴가 범위 및 의무 확대,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의 재택근무 의무화 추진 등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특히 이러한 제도들을 기업들이 적극 수용함으로써 일찌감치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보다 높은 수준인 합계출산율 1.2~1.3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초점이 돈이 아닌 직장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토추상사의 사례만 보더라도 야근을 줄이고 아침밥을 준다는 것에서부터 노동시간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개인에게 행복감을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처럼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볼 게 아니라 가족을 형성하는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우선 시 돼야 하는데, 가족이 행복하고 개인이 편해야 아이를 낳는 것이지 국가가 돈을 더 준다고 낳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책상 돈과 휴가를 더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상 부부들에게 휴가를 줘도 육아에 종일 매진해야 하고 경력도 점차 단절돼 힘들어 한다”며 “차라리 사내 시설을 잘 갖추고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해서 말 그대로 일과 과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프라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결국 현실적으로 비용 문제가 뒤따른다며, 정부와 기업의 관점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실 대기업은 사내 유치원 등 인프라를 갖출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정부가 여러 기업들이 이 같은 인프라를 갖춰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 역시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위한, 그래서 이것이 가족을 형성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해주겠다는 관점으로 제도를 시행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고, 이렇게 되면 장기근속 등 긍정 효과도 함께 동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