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와 전문가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보험산업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라고 주장했다.
31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와 보험회사 재무건전성’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백천우 코리안리재보험 CAT모델링파트장은 “자연재해가 늘어나는 영향을 보험산업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라면서 “방법론에 따라 과다하게 로스를 산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손실(로스)은 보험계약자가 받는 보상액이다. 통상 보상액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액을 추정한다. 그런데 백 파트장에 따르면 피해액의 정확한 예측이 쉽지 않다. 백 파트장은 “제방이 넘치면 그 다음에 다시 넘치지 않도록 이전보다 더 높이 제방을 쌓는다”고 했다. 이러한 조치가 있어 같은 강도의 재해가 다시 일어났을 때 피해액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지급한 보상액과 피해액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 파트장은 피해액과 보상액 차이를 뜻하는 프로텍션 갭이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적고 아시아에서 크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시가 낸 집중호우 피해 자료도 제시했다. 서울시는 사고 빈도가 높은 광진구가 가장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백 파트장이 실제 보험사에서 집계한 침수 사고 기록을 살펴봤을 때 보상액이 가장 컸던 곳은 서울시가 비교적 피해액이 적다고 분석했던 강남구였다.
백 파트장은 보험사의 손실이 늘어날 때만 보험료가 오르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백 파트장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 자연재해가 잇따르자 한 보험사는 관련 보험 상품을 줄이는 등 노출을 최소화했다. 그랬는데도 보험료가 올랐다. 백 파트장은 “리스크가 30% 이상 줄었는데 보험료는 오히려 높게 받았다”며 “(여러 요소가) 유기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 토론자로 참석한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장도 “기후변화로 국내 보험사가 커다란 영향을 받았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원장은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지수인 계리기후지수(ACI)와 보험사 지급보험금 사이 관계가 있다는 연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ACI는 정광민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온난일, 한랭일, 5일 최다강수량, 최대무강수지속기간, 풍속 등을 합산해 만든 지수다. 이 대학원장은 “UNEP는 홍수나 화재 등 건건이 영향을 분석한다”면서 “ACI처럼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것이 보험사의 정확한 손실을 파악하는 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권승수 코리안리재보험 상무도 “기후변화가 회사 리스크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온난일이나 강수량 각각이 서로 다른 분포를 띨 것 같은데 단순합산한 지표가 통계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을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토론에 앞서 주발제를 한 정광민 교수는 “요인별로 구분하려면 데이터 수집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손해율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정확하게 봐야 정확한 위험계수를 추정할 수 있는데, 데이터를 구하기 어렵다”면서 “업계와 감독 당국, 학계가 힘을 모아 데이터 베이스도 만들고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