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를 보름 가량 앞두고 분양자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 눈치에 가계부채 관리 중인 은행들이 잔금대출에 몸을 사리고 있어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27일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1만2000여 세대에 달하는 둔촌주공 첫 입주가 시작된다. 둔촌주공 입주자는 분양대금 중 중도금대출을 상환하고 입주 지정일에 나머지 잔금 20%를 납부해야 한다.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은행들이 저마다 금리를 낮춰 잔금대출(집단대출) 취급 경쟁에 돌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둔촌주공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유탄으로 상황이 다르다. 시중은행들은 아직 집단대출 참여 여부나 금리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로 시중은행들은 눈치싸움 중이다.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속도를 보면서 잔금대출에 참여할지 말지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은 잔금대출을 취급할 예정이지만 금리는 검토 중이다. 신한은행은 “아직 내부 검토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둔촌주공의 경우, 세대당 대출 금액이 크고 조합에서 협상하면서 금리를 최대한 낮추려 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 예대마진도 크지 않다”며 “지금처럼 가계대출 줄이려고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하면서 총력을 다하는 분위기에서 은행들이 잔금대출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제시하는 금리를 보고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 수협은행은 이달 중순에나 잔금대출 상품 확정이 가능하다고 알렸고, IBK기업은행은 아예 ‘올해는 대출이 어려울 것 같다’고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송파새마을금고는 금융위원회가 주관한 제2금융권 가계대출 점검회의를 앞두고 지난달 23일 잔금대출 상담을 중단했다가 28일 재개했다. 하지만 역시 금리가 결정되지 않아 상담자들에게 구체적 정보 전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둔촌주공 한 대출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하지만 지금은 은행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잔금대출 금리를 명확하게 내놓은 곳은 지역농협인 광주농협이 유일하다. 광주농협은 지난주 4.2% 변동금리에 대출기간 최대 30년을 제시했다. 대출한도는 무주택자의 경우 감정가의 70%, 다주택자는 감정가 60%가 나온다고 안내했다. 조합원의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00~150%가 적용되고 일반 분양자는 50%다.
이에 더해 조건부 전세대출도 쉽지 않아 입주 시기를 내년으로 늦추는 입주예정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둔촌주공의 입주 기한은 내년 3월 말이다. 조건부 전세대출은 대출 실행일에 주택의 소유권 이전이 수반되는 전세대출로, 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에 활용된다. 현재 주요 4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은행) 가운데 하나은행만 조건부 전세대출이 가능하다.
불확실성이 계속되며 예비 입주자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은행들이 정부 눈치를 보면서 집단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대출을 내주더라도 이 틈을 타 금리를 높게 책정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급기야 “정부 정책이 실수요자를 고사시키고 있다. 입주 시기가 11월이라는 이유로 이런 철퇴를 맞는 건 옳지 않다”면서 금융감독원과 대통령실 등에 지난달 31일부터 집단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내부 정책에 따라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개입 여지가 크지 않다”면서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