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한 버스정류수에 정차한 버스를 향해 한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버스정류소 옆으로 1.4m 떨어진 스마트쉼터 앞, 폭 1.3m에 불과한 보도 위를 아슬아슬 달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정류소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시민은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옆 스마트쉼터에 1~2명 정도 앉아있고, 나머지 시민들은 스마트쉼터와 도로 사이 좁은 보도 위에 서 있었다. 정류소 벤치 앞 버스 노선표를 확인한 시민들은 다시 스마트쉼터 앞 좁은 공간으로 돌아갔다. 정류소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는 스마트쉼터가 시야를 가려 정류소를 향해 오는 버스가 보이지 않는 탓이다. 정류장 의자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음료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려보니 몸을 한껏 도로 쪽으로 기울여야만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착 버스를 알려주는 버스정보안내단말기는 스마트쉼터 너머에 자리했다. 버스정류소에서 버스정보안내단말기를 보기 위해선 스마트쉼터 안에 들어가거나 스마트쉼터를 지나야 확인이 가능했다. 쉼터가 동선 상 불편하게 위치해 버스정류소가 제기능을 잃은 모습이다.
특히 스마트쉼터 문이 도로를 향해 나 있어 버스가 정류소에 멈출 때마다 쉼터 밖으로 나온 시민들과 쉼터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좁은 승하차 공간으로 몰렸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은 승하차가 더욱 위험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민 이모씨는 “늦은 시각 스마트쉼터에 취객, 노숙자 등이 자리잡아 이용이 어려울 때가 많다. 또 너무 춥거나 더운 날엔 쉼터 내부에 사람이 많아 (밀폐된 스마트쉼터가 아닌) 밖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정류장 벤치에선 쉼터가 시야를 가려 몸을 도로 쪽으로 내밀어 확인할 때가 많다. 위험한 걸 알지만 버스 오는 걸 확인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며 “버스가 도착해도 버스 승차 지점의 공간이 비좁아 사람이 많을 땐 정말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신촌역 인근 버스정류장 상황도 비슷하다. 오후 5시30분쯤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이 스마트쉼터와 차로 사이 공간에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직장인 김모씨는 “버스정류소와 스마트쉼터를 하나로 합치면 승하차 공간이 깔끔해질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따로 나뉘어 설치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도보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객 모두 위험할 수 있는 스마트쉼터는 자치구 곳곳에 있었다. 서울 강남구 출퇴근 시간 유동인구가 많은 선릉역 근처 한 버스정류소 옆 스마트쉼터도 정류소와 4m가량 떨어져 설치됐으며, 쉼터 앞과 차도 사이 폭은 1.2m에 불과했다. 강남구의 또 다른 버스정류소 옆 스마트쉼터도 정류장과 가로수를 사이에 두고 3.3m 떨어져 있었다. 스마트쉼터 앞과 차도와의 거리는 1.6m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9개 자치구에 버스정류장 인접 스마트쉼터 183곳이 설치돼 있었다.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지침’에서는 교통 관련 시설 중 보도 상의 시설물은 보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보행안전공간 외 구역이나 공간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승차대로의 접근 및 진출입 통로 폭은 1.5m 이상 확보해야 한다.
자치구가 자체적으로 설치하는 스마트쉼터는 서울시가 조성한 버스정류장 시설 ‘스마트쉘터’와는 다르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거나 버스 도착 정보를 볼 수 있는 등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설치와 관리 주체가 다르다. 서울시는 안전상의 이유로 버스정류장과 20m 간격을 두고 스마트쉼터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