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대생 등에 업은 의협 비대위…‘의대 증원 백지화’ 강공

전공의·의대생 등에 업은 의협 비대위…‘의대 증원 백지화’ 강공

기사승인 2024-11-19 06:00:08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 구성과 향후 대정부 투쟁 방향 등을 발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의정갈등 문제를 풀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다. 새로 발족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전공의·의대생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부를 상대로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철회를 위한 강공에 나설 전망이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현택 전 의협회장 탄핵에 따라 꾸려진 의협 비대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총 15명으로 구성된 의협 비대위에 전공의·의대생이 각 3명씩 참여하게 됐다. 특히 그동안 임 전 회장 집행부와 갈등을 빚어온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의협 비대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공의·의대생뿐만 아니라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직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비대위 구성안을 제안했고,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에서 압도적인 수로 의결했다”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가 꾸려지며 의대 정원 증원 철회,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기 등 의료계의 대정부 압박 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시한폭탄’이라고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부문에 갖가지 시한폭탄을 장착해 놓았다. 보건복지부가 자신들의 책임은 외면하고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내놓자 전공의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이라며 “정부의 변화가 없다면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농단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자신들의 책임은 외면하고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내놓자 전공의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해주고 시한폭탄을 멈추게 해준다면 현 사태가 풀리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공의와 의대생을 아우르게 된 의협 비대위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포함한 정부와의 대화 자리에 쉽사리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의체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 의협 비대위는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지난 17일 열린 협의체에서 제시된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 방안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의료계는 협의체에서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 정원으로 이월하지 않거나, 예비 합격자에 대한 선발을 축소해 추가 합격을 줄이는 방안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협의체에는 의료계 대표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의회(KAMC)만 참여하고 있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0명(증원 유보)으로 하고 2027년부터 인력 수급 추계위를 통해 증원을 논의하자고도 제안했지만, 정부는 2026년에도 추계위를 통해 증원 수준을 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2024학년도 대비 1509명 늘린 4565명으로 사실상 확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원을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대학 입시 요강과 고등교육법에 명시한 사안을 뒤집을 수 없는 데다가 지원자를 뽑는 학교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변경하기 굉장히 어렵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변함없다”라며 “협의체가 두 차례 회의를 열었고 아직 입장 차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화가 시작됐기에 계속 협의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이대로라면 의정갈등 혼란은 내년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내년에도 정부에 대한 투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의대협은 지난 16일 전국 40개 의대·의전원 대표 40명의 서명이 포함된 결의문을 내고 “정부가 초래한 시국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협회의 대정부 요구안 관철을 향한 투쟁을 2025학년도에 진행하겠다”면서 정부의 의료 정책을 ‘의료개악’으로 규정했다. 의대협은 동맹 휴학, 수업 거부 같은 구체적인 투쟁 방식을 더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차례 내홍을 겪었던 의료계는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결집해 대정부 투쟁 동력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의료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협 비대위가 후배 의사들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길 바란다”라며 “선·후배가 행동을 같이해 공감하고 지지해야 한다. 비대위를 거쳐 의료계 내부 갈등이 해소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전공의와 의대생이 비대위원으로 참여한다는 점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다”라면서도 “의협 비대위는 한시적 조직이라서 얼마만큼 리더십을 갖고 의료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청와대에서 일하고 의료 정책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박형욱 교수가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며 “법조인이자 의료인, 교육자로서 정부와 좋은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의대생과 전공의를 비대위의 핵심으로 구성하면서 젊은 세대를 통해 의협이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예방의학과 전문의인 박 비대위원장은 사법연수원(37기)을 수료한 후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활동했다. 학계로 돌아온 후엔 의료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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