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분리 막혀 사각지대 놓인 ‘탈가정 청년’, 서울시의회 대책 마련 나선다

세대분리 막혀 사각지대 놓인 ‘탈가정 청년’, 서울시의회 대책 마련 나선다

기사승인 2024-11-20 17:52:56
20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 탈가정 청년 보호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282북스

#A(29·여)씨는 26세에 집을 나왔다. 그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부모로 인해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4인 가족의 생활비를 모두 감당해왔다. 돈이 없다고 하면 폭력이 돌아왔다. 그는 결국 가족과 연을 끊었다. 위기 상태에 놓인 A씨는 정부 지원이 간절했다. 수급 신청을 했지만, 현행법상 30세 미만이면 세대분리가 불가능해 지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가정폭력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고 했지만, 경찰 신고기록이 없어 인정받지 못했다.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떠난 ‘탈가정 청년’들이 만 30세 미만은 세대분리를 하지 못하게 만든 현행법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가 탈가정 청년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례안’을 제정하는 등 팔을 걷고 나섰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20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서울시 탈가정 청년 보호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30세 미만의 미혼자녀’는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더라도 부모와 동일가구로 보는 국민기초생활법상 규정으로 인해 탈가족 청년은 기초수급을 신청할 수도, 청년 주택에 지원할 수도 없다”며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다함께 관심을 갖고 올바른 지원 근거를 마련해 나갈 차례가 왔다”며 “선도적인 입법 대안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세대분리법) 시행령은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여도 ‘미혼 자녀 중 30세 미만인 사람’이라면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20대 청년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암수범죄인 가정폭력의 특성상 서류 형태로 남기기 어려워 독립가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적다. 이 연령 기준으로 인해 20대 청년들은 생계급여, 주거급여 등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LH임대주택, 청년전세대출 등 각종 지원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강미선 282북스 대표가 20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 탈가정 청년 보호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82북스

이날 발제를 맡은 강미선 282북스 대표는 상당수의 탈가정 청년들이 세대분리법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282북스는 지난 2022년부터 서울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영아너스클럽 청정모 지원사업을 통해 탈가정 청년들의 심리·정서적 자립을 지원하고,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 ‘궤도이탈; 청년 독립 선언’을 진행해왔다. 

강 대표는 “현 복지 체계와 정책은 부모와 가구, 거주지 기준으로 마련돼 있다. 가족과 완전히 단절했음에도 행정상 가족이 있는 상태로 남아있다 보니, 30세 미만의 청년들은 세대분리법으로 인해 독립가구로 인정받지 못하고, 원 가정에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 신청도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에 신고한 기록,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담기록 등을 제출하면 처리될 가능성이 있으나, 증빙 자료가 없는 경우가 많아 담당자가 승인해주길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탈가정 청년은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면서 “원가정 중심의 지원 제도, 주소지 중심 행정체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세대분리법, 자립준비 청년에 대한 정의 확대 등 기존 제도를 다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는 ‘탈가정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탈가정 청년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조례안은 19세 이상 29세 이하의 탈가정 청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년마다 실태조사 진행, 지원사업 시행, 서울시 탈가정청년 지원센터 설치, 탈가정청년 쉼터 운영 등 내용이 담겼다. 

김인제 서울시의회 부의장은 “탈가정 청년의 온전한 사회적 자립을 위해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지원은 법·제도 근거가 마련돼야 이뤄질 수 있다”며 “서울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우리 청년들이 조금이라도 고민을 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성흠제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도 “청년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 공동체 전체의 몫”이라며 “조례 제정은 이런 청년들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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