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가명·65·남)씨는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증상이 이어져 최근 안과를 찾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고민하던 중 ‘신경안과’라는 분야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대장암 전이로 인해 눈을 움직이는 근육과 신경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펜라이트 하나로 눈을 통해 환자의 몸을 들여다봅니다.” 최근 쿠키뉴스와 마주한 신현진 건국대학교병원 안과 교수는 신경안과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신 교수는 “신경안과는 녹내장, 망막 등 특정 안과 질환을 보는 것이 아닌 눈을 통해 전신질환을 살핀다”며 “예를 들어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눈꺼풀이 부어오른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다른 질환이나 증상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알아낸다”고 말했다. 이어 “안과 의사이지만 내과, 신경과 등 다양한 분과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라고 했다.
신경안과는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 시신경 이상, 상세 불명의 시력저하 등을 다룬다. 설명이 되지 않는 증상 때문에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여러 안과를 다녀봤지만 눈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은 이들이다. 이런 환자들 중에서는 뇌신경, 심장, 면역계 등에 문제가 일어나 눈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가 있다. 신경안과는 눈에서 보이는 증상과 더불어 병력, 최근 상태 변화 등 환자의 ‘히스토리’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 속에 숨겨진 진짜 원인을 찾는다.
신 교수는 “눈은 신체 장기의 하나로 다른 전신적 질환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며 “질환의 원인을 찾아 적정 진료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농구에 비유하자면 공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포지션인 가드인 셈”이라고 언급했다. 신 교수는 시력이 저하된 15세 여성 환자 사례를 소개했다. 앞이 뿌옇게 보이고 기력이 떨어졌다고 호소하며 내원한 환자는 흰자위가 창백했고 안저검사에서 망막 출혈이 관찰됐다. 신 교수는 즉각 혈액검사를 실시했고, 급성백혈병이 의심돼 혈액종양내과와 협진을 진행했다.
신경안과의 필요성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더 커질 전망이다. 신 교수는 “고령자가 늘면서 신경안과의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65세 이상 인구의 5%가 뇌혈관질환을 앓고 있고, 뇌졸중 환자 10명 중 6명이 반맹, 복시 같은 시각 합병증을 겪는 만큼 눈을 통해 질환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는 증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신경안과가 이미 안착한 미국은 세부 전문의 교육까지 잘 구축돼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09년 한국신경안과학회가 발족한 이후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신경안과를 배치하는 의료기관이 점차 늘고 있다.
신 교수는 “국내 의료 수가 체계에선 신경안과가 뿌리내리기 어렵다”며 “처음 내원한 환자 한 명당 원인질환을 추론해 내기까지 10~15분의 시간이 필요한데, 현행 시스템 안에선 1분이든 10분이든 동일한 수가가 적용된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의사가 진료를 본 시간 만큼 수가를 주지만, 우리나라는 단일 수가라 병원이나 의원에서 신경안과 진료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다행히 최근 심층 진료라는 수가 항목이 신설돼 앞으로 신경안과 진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신경안과에 대한 국민 인식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최근 관련 강의가 온·오프라인에서 이뤄지면서 의료진들도 신경안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일반인 대부분은 신경안과가 무엇을 다루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또 “제때 진단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환자들에게 신경안과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신 교수는 “갑작스러운 시력저하나 시야 이상은 뇌졸중의 전조 증상일 수 있으며 통증을 동반한 복시, 눈꺼풀 처짐 등은 뇌동맥류처럼 생명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 “오래 전부터 겪어온 증상이든 갑작스러운 증상이든 제대로 진단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면, 신경안과가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