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불법복제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학가 전공서적 불법복제물 제작과 거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인 대학생 의견을 듣고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박물관 국회체험관에서 ‘대학생이 말하는 디지털 불법복제 현장 실태와 대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전재수‧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승수‧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주관은 교수신문‧쿠키뉴스‧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인회의‧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한국학술출판협회‧한국대학출판협회가 함께 맡았다.
이번 토론회는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등이 기조발제를 하고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종합토론에는 최현석 교육부 인재정책실 인재양성지원과 과장, 김성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미디어정책국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과장, 김기태 세명대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와 고려대, 경북대, 한양대 학생 등이 참여했다.
디지털 불법복제는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학술서적 등 콘텐츠 유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불법 다운로드 관련 데이터 제공 기업 무소(MUSO)에 따르면 지난 2022년 4월1일부터 2023년 3월31일까지 2206억건의 해적 사이트에 방문한 결과, 608억건이 불법복제 사이트로 조사됐다.
특히 전공서적 같은 출판물 불법복제가 만연해지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전국 대학교 주변 복사집을 현장 단속한 결과, 지난해 출판 불법 복제물 수거 및 삭제 업소가 76곳, 출판 불법 복제물 수거 및 삭제 수량이 370부나 됐다. 2022년 대비 업소 수는 약 171%, 수량은 약 138% 늘어난 수치다.
“교재비, 많게는 수 백 만원…경각심↓”
학생들은 교재 비용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최예진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학생은 “대학교재가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많은 과목을 수강하다보니 비용 부담이 더해진다”며 “불법복제된 PDF 사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일부는 당연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예준 충남대 물리학과 학생 역시 “대부분이 수십에서 수백 만원 정도 되는 교재비 부담을 안고 있다”며 “단체 대화방을 통해 불법복제물을 공유 받을 수 있는 링크가 공유되는 등 경각심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저작권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기준 불법복제를 경험해봤다고 응답한 비율은 42.3%로,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이유로는 ‘정품 콘텐츠 가격 부담’이 2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한국 출판 생태계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창작물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작권이나 지식재산권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형성되는 데도 부정적이다. 최 교수는 “창작자와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현석 과장은 대학가에서 이뤄지는 불법복제가 고도로 전문화된 학술자료를 대상으로 이뤄져 더욱 치명적이라고 했다. 그는 “공급자 입장에서 품질 저하는 물론, 수익성 낮은 분야의 새로운 연구 기반 교재 출판을 꺼리는 문제로 나아갈 수 있다”며 “소규모 학술 출판사에게는 재정적 취약성이 더 치명적이다. 궁극적으로 실험적인 도서와 공급자 감소로 접근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의 다양성을 헤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인식 개선…정부 지원도 중요”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교육부는 관계부처와 협업해 ‘대학생을 위한 저작권보호 가이드라인’, ‘대학생 출판물 불법복제 관련 저작권 교육 영상’ 등을 보급하고 있다. 문체부 역시 한국저작권보호원과 함께 대학생을 대상으로 저작권 인식 향상에 힘쓰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권유빈(한양대)씨는 “불법복제물 제작자와 사용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동시에 사회적 인식 개선과 확산 방지를 위한 교육이 필수 교육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효은 경북대 학생 역시 “대학교 커뮤니티 내 불법복제물을 모니터링 해보니 판매자뿐만 아니라 구매자 수요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문제라고 파악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대학생들에게 복제물 거래가 불법이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으면 거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으리라 본다”고 짚었다.
이용자와 창작자, 대학 등 주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전공책을 사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석을 부를 때, 교재를 들어서 보이게 하고 시험은 오픈북으로 본다”며 “저작권 관련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용자의 노력은 물론, 필수 저작권 교과목 편성이나 관련 지식을 학습할 수 있도록 자료 열람 콘텐츠를 만드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현석 과장은 “양질의 학술도서와 학술자료가 보급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해나가는 중”이라며 “대학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해결방안을 채택‧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는 대학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필요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조 의원 역시 “전공서적 구매 비용이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불법복제할 유인을 줄이기 위해 인식 개선 교육과 국가적인 지원 정책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 의원은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윤리의식 함양과 교육 강화도 함께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며 “토론회 논의를 바탕으로 디지털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힘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