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금리 인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단숨에 1450원을 뛰어넘었다. 기업들의 환차손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만기연장 등으로 지원에 나섰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1435.5원)보다 16.4원 오른 1451.90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고 예고한 여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연준은 시장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4.75%에서 4.5%로 25bp 인하했다. 연준은 또 앞으로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고 예고했다. 시장은 이를 ‘매파적’으로 받아들였고, 달러 강세가 심화했다. 연준은 최근 견조한 경제상황, 다소 주춤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 등을 반영해 내년 정책금리 전망을 시장 예상(3회 인하)보다 축소(2회 인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환율에 원자재나 원재료를 많이 수입하는 기업으로선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환율이 10% 상승하면 원가는 3.68%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환율 타격이 큰 대표 업종으로는 포스코·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업종과 정유·화학 등 기간 산업, 항공업이 꼽힌다. 반도체·배터리 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단기적으로는 제품 판매 가격이 높아져도, 장기적으로는 원재료나 부품 가격 상승으로 수익에 타격을 준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은행들에 기업의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조정을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기업금융 상황점검회의’에서 “최근 외환시장의 변동성 우려를 고려해 기업들의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의 탄력적 조정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업권에 요청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기업이 원재료를 매입하기 위해 수입신용장을 개설한 경우, 개설 은행은 수출업자에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일정 기간 후 수출업자는 은행에 결제의무를 진다. 기업은 결제일이 돌아오면 결제의무에 따른 외화매입수요가 발생하는 구조다. 은행권이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 조정에 나서면 기업은 연말 높아진 환율로 외화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은행들도 기업 부담 덜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환율 변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금융부담 완화를 위해 수입신용장을 이용하는 개인사업자에 대한 신용장 대금 결제일 특별 연장을 실시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특별 연장은 영업점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고환율로 인해 수입업체들이 대금 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결제일 연장이 업체들의 숨통을 트여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17일 신용장 만기가 도래하는 수입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만기연장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또 환율 상승에 따라 일시적 결제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여신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13일 운영을 시작한 ‘기업고충 지원센터’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환율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한 세무, 회계, 외환, 법률, 마케팅 컨설팅 등 금융·비금융 토탈 솔루션도 제공 중이다.
우리은행은 내년 1월부터 수출입 기업 위기 극복과 국가 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5000억원 규모 금융지원에 나선다. 우리은행은 환율 상승으로 운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수출입 기업에 경영안전 특별지원 명목으로 회사당 최대 5억원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수출 기업에는 2700억원 상당의 무역보험공사 보증서 담보대출을 공급하고, 수입 기업에는 외화 여신 사전 한도 부여, 신용장 개설·인수 수수료 최대 1% 우대 등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