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이봉창 의사 의거 제93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종찬 광복회장 등 보훈 관련 인사와 시민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의사는 1901년 8월1일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1931년 1월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이후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거사를 준비했고 약 1년의 준비를 마친 이 의사는 같은 해 12월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했다.
이듬해인 1932년 1월8일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동경 경시청 앞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그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10일 동경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에 순국했다. 이 의사의 의거는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렸음은 물론, 당시 침체기를 겪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큰 활력소가 됐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대상으로 거행한 의거는 중화민국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등 독립운동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이에 의사의 의거가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기억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1962년 이 의사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다만 최고 건국공로훈장인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지 않아 학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기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봉창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사와 존경의 의미가 확산됐으면 한다”며 “특히 이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성공한 의거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재건했다. 이 의사가 후손없이 서거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 독립기념관 이사 활동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지원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