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가면 쓴 평양 의류…북한 봉제공장의 생존 전략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중국산’ 가면 쓴 평양 의류…북한 봉제공장의 생존 전략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1-10 16:04:33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평양시는 북한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섬유, 봉제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북한의 봉제공장은 주로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그중 평양시의 봉제공장은 규모와 생산 효율성 면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1. 평양시 수출 피복공장의 구조와 운영 방식

평양시 내 봉제공장은 중앙정부의 계획경제 체제에 따라 운영된다. 주요 공장으로는 평양 봉제공장, 봉화 봉제공장, 만경대 봉제공장 등이 있다. 공장들은 국가 소유이며,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현대식 시설을 갖춘 대규모 생산라인부터 소규모 작업장까지 공장의 규모는 다양하다.

이들 공장은 주로 임가공 방식으로 운영된다. 임가공이란 외국에서 원단과 부자재를 제공받아 제품을 완성한 뒤 이를 다시 외국으로 보내는 생산 방식이다. 북한은 주로 중국으로부터 원단과 부자재를 수입한다. 그 후 평양의 공장에서 이를 가공한 뒤 완제품을 중국이나 제3국으로 수출한다. 임가공 방식은 북한이 국제 제재 속에서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수단 중 하나다.

또한, 평양시 봉제공장은 노동집약적 산업 특성상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의 월급은 극히 낮은 수준(대략 3~5달러)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 경제적 중요성과 외화벌이

평양시 봉제공장은 북한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가 강화된 이후,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몇 안 되는 합법적인 경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유엔 제재 결의안 2375호(2017년) 이후 섬유 제품 수출이 금지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중국 기업과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봉제 제품을 생산·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의 봉제공장에서 생산된 의류는 ‘중국산(Made in China)’ 라벨을 붙여 중국을 통해 제3국으로 수출된다. 이는 국제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과 대량 생산 능력을 무기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평양시 수출 피복공장은 종업원이 1000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공장이 67개, 종업원이 5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중규모 공장이 165개, 종업원이 100명 미만으로 구성된 소규모 공장이 1030개로 조사 됐다. 평양시 수출 피복공장에서 일을 하는 인원은 대략 25만명이다.

수출 피복공장은 중앙당 39호실 산하 대성지도국, 대흥관리국, 봉화지도국, 모란지도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 2017년 기준으로 2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 유지와 군사 자금 조달에도 이바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3. 노동 환경과 사회적 측면

평양시 수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들은 국가의 계획에 따라 배치된다. 

평양시에서 대표 수출 피복공장을 운영하는 대성지도국, 대흥관리국, 봉화지도국, 모란지도국은 남녀정장을 만드는 곳이다. 최고의 인력과 시설이 있다. 종업원의 월급은 북한 돈으로 5000원이다. 배급으로는 쌀,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을 받고 있다. 또 월급 이외에 성과급으로 50~100달러를 받고 있다. 

노동 조건은 열악한 편이다. 긴 근무시간과 낮은 임금이 특징이다. 하지만 1달에 2번 쉬고, 도시락 2~3개를 싸 와서 주야간 새벽 2~3시까지 일을 한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이러한 일자리가 안정적인 소득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봉제공장은 단순히 경제적 의미를 넘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집단생활과 사상교육을 병행하며, 이는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4. 평양시 봉제공장의 현재와 미래

평양시 봉제공장은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유엔 제재와 국제 규범에 위배되는 활동으로 지적받기 때문이다. 특히 강제 노동 문제와 관련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이 비자발적인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제 인권 단체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북한의 봉제 산업은 중국 기업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될 경우 협력 관계가 약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평양시 봉제공장의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양시 봉제공장은 북한 경제와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곳은 단순히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북한 정부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박과 내부적인 경제 문제는 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평양시 봉제공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국제 정세와 대북 제재 완화 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동시에 노동 환경 개선과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산업은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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