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혼란 속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개점휴업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방송·통신에 대한 규제와 정책 또한 헐거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기준 방통위는 164일째 회의를 열지 못했다. 지난해 7월31일 이후 심의·의결이 중단된 것이다. 지난해 회의 횟수는 34회에 그쳤다. 지난 2023년 45회, 지난 2022년 67회, 지난 2021년 59회 열렸던 것과 비교하면 많게는 절반가량 적게 열렸다.
방통위는 위원장 등 상임위원 5인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다. 지난해 7월 말까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부위원장인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2인 체제로 심의·의결을 진행했으나, 이 위원장이 탄핵 소추되며 방통위는 기능을 멈추게 됐다.
법에 따른 방통위 심의·의결 사항은 29가지에 달한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임명, 지상파·위성방송·유선방송사업자 등에 대한 재허가, 방송·전기통신사업자의 금지행위에 대한 조사 및 제재, 방송·통신 기금 관리 및 운용, 보편적 시청권 보장 등이다. 방송과 통신 전반에 대한 조사와 제재, 지원 등을 아우르는 사항들이다.
방통위 심의·의결 중단에 따른 공백은 커지고 있다. KBS 1TV, MBC TV, EBS TV를 포함한 국내 12개 사업자 146개 채널에 대한 재허가는 지난달 31일까지였다. 방송 허가 기간이 종료된 채널들이 사실상 무허가 방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통신 등에 대한 제재도 지난 7월 이후 중단됐다. 위법 사항이 있더라도 이를 들여다만 볼뿐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방송·통신에 대한 이용자의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재 안건이 쌓일 경우 나중에 정상화가 이뤄지더라도 한 번에 처리가 어렵다.
기술 경쟁이나 표준 도입 등 국제 사회에 발맞춰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연구, 국제협력에 대한 심의·의결도 멈췄다.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 큰 문제는 방통위 운영 정상화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밀려 일정이 일부 연기됐다. 이달 말 선고가 이뤄져야 하지만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향후 이 위원장이 돌아오더라도 2인 체제가 지속되는 이상 정상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인다. 2인 체제 당시에도 심의·의결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늘 따라붙었다. 이는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 사유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방통위 운영 혼란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낸 고삼석 동국대학교 AI융합대학 석좌교수는 “방통위 상임위원 5인의 숫자를 다 채워야 정상화가 가능한 상황”이라면서 “다만 현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정상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만약 이 위원장이 복귀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며 “방통위를 재구성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정상화는 난망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단기적 해법으로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5인 체제에 대한 합의를 보는 것이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정치 상황에 따라 문제가 반복되는 방통위 체제에 대해 진단해 보고 방송·통신을 나누는 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