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양측이 제안한 안건에 대한 의결권 자문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어 주총 당일에서야 최종 결과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오는 23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소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과 MBK 연합 측이 제안한 안건의 표 대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최 회장 측은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분기 배당 도입, 발행주식의 액면 분할 안건과 함께, 주주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과 이사회 이사 수 19명 상한, 신규 이사 7명 선임 등 안건을 제안했다.
이 중 최 회장 측의 핵심 안건으로 꼽히는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행사하는 것이 아닌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받은 뒤 선호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사 2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총 2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2표를 1명에게 몰아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특히 의결권을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는 ‘3%룰’이 적용돼 MBK 연합 대비 지분이 적은 고려아연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0.97%를, 최 회장 측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약 34%를 확보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해당 안건에 대해 “집중투표제가 소수 주주들의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상법상 대표적인 ‘소액주주 권리 보호 방안’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MBK 측은 고려아연의 현재 정관이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배제하고 있고, 정관 변경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 유효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 MBK 연합은 14명의 신규 이사 선임 안건과 더불어 집행임원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집행임원제는 이사회는 주요 의사결정과 경영 감시에 집중하고, 집행임원은 업무 집행을 전담해 이사회와 경영진을 분리하기 위한 제도다.
MBK 연합으로서는 고려아연이 도입하려는 집중투표제를 저지하고, 일부 우호 세력을 확보해 지분 대결로 자신들이 추천한 신규 이사 후보 14명을 진입시켜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는 게 목표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3명으로,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제외하면 모두 최 회장 측 인사로 분류된다.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진을 제외하면 이번 주총에 따라 최대 21명의 신규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편, 이들 안건에 대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도 다소 엇갈린 상태다. 다만 대체로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성과 및 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집중투표제에 대해 각각 찬성과 반대를 권고했다. 특히 글래스루이스는 이사 수 19명 상한 제한, 소수주주 보호 명문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 찬성 권고와 더불어 신규 이사 선임도 최 회장 측 추천 후보(4인) 찬성을 권고했다.
글래스루이스는 “집중투표제는 특정 지배 주주를 과도하게 우대하기보다는 더 광범위한 주주 기반을 대표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모든 이사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의 구성원 수가 20명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ISS는 집중투표제에 반대하면서도 이사 수 상한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또, MBK 연합 측이 제안한 신규 이사 후보(4인)에 대해서만 찬성을 권고했다. ISS가 MBK 측 손을 들어줬으나 이사회 과반을 장악해야 하는 MBK 연합의 계획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 4대 의결권 자문사 중에선 서스틴베스트, 한국ESG평가원, 한국ESG연구소가 집중투표제에 찬성했고, 한국ESG기준원이 반대를 권고했다. 한국ESG기준원은 “장기간 정관 내 집중투표제를 배제해 온 회사가 경영권 분쟁의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이는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그 본래 목적인 소수주주권 보호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사유를 밝혔다.
이밖에 이사 수 상한에 대해서는 4대 의결권 자문사 모두 찬성했으며, 신규 이사 후보에 대해 서스틴베스트는 MBK 측 후보 7명을, 한국ESG평가원에선 고려아연 측 후보 7명을, 한국ESG연구소에선 고려아연 측 후보 4명과 MBK 측 후보 3명을, 한국ESG기준원은 MBK 측 후보 7명의 찬성을 권고했다.
고려아연 측 후보에 찬성을 권고한 것은 현 경영진의 경영성과에 대한 긍정 평가 측면에서, MBK 측 후보에 찬성을 권고한 것은 현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할 역할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관건은 이들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받은 약 10%로 추산되는 소액주주들과, 4.5% 지분을 보유해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선택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는 오는 17일 고려아연 임시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에 따라 수책위는 기본적으로 집중투표 배제를 반대하고, 도입하는 안건에 찬성하도록 돼 있지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원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최근 한석훈 수책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집중투표제는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나는 이례적 제도”라며 부정적인 기류를 내비친 반면, 수책위가 참고하는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은 대부분 집중투표제 찬성을 권고해 어떤 결정이 날지는 예측이 불가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