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이제 서로 협력해야 할 때 [데스크 창]

한 지붕 두 가족, 이제 서로 협력해야 할 때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1-16 11:07:09
이영재 문화스포츠부장
바둑이라는 한 지붕에서 살고 있는 두 가족,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서로 화합할 수 있을까. 바둑계 위기설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협력해야 할 때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제10대 대한바둑협회 회장 선거에서 기호 1번 하근율 후보가 유효투표 129표 중 50표를 얻어 당선됐다. ‘3파전’으로 열린 올해 선거는 예년과 달리 치열했다. 2위를 차지한 정봉수 현 대한바둑협회장이 45표로 하근율 당선인과 불과 5표 차이였고, 선거가 임박했을 때 깜짝 출사표를 올렸던 이종구 전 의원 또한 34표를 받았다.

바둑계는 ‘재단법인 한국기원’과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가 양립하며 프로바둑(한국기원)과 아마추어바둑(대한바둑협회)을 각각 이끈다는 점에서 여타 체육계 혹은 스포츠 단체들과 큰 차이점이 있다. 서로 맡은 경계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권을 놓고 두 단체가 부딪히기도 하면서 바둑계 발전을 저해하고 혼란을 초래한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마추어 바둑인들에게 발급되는 단·급증 문제가 있다. 당초 한국기원이 아마추어 단·급증을 발급해왔으나 대한바둑협회에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두 단체의 갈등이 격화됐다. 결국 지금은 양 단체가 각각 단·급증을 발행하는데, 일부 대회는 특정 단체의 단·급증이 있어야만 출전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생기면서 혼란을 야기했다. 바둑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불만이 컸다. 공인된 단체라 믿고 단·급증을 발급 받았는데, 특정 대회에 나가려면 다른 단체의 단·급증을 중복해서 발급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바둑을 매개로 한 상품이나 바둑 팬들에게 팔리는 콘텐츠를 아직 개발하지 못한 바둑계로선 사실상 유일한 ‘이권’으로 볼 수 있는 단·급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기조다. 일례로 한국기원은 아마5단증 발급에 80만원, 6단증에는 160만원의 비용을 받는다. 2024년 8월13일자 쿠키뉴스 단독 보도 ‘[단독] ‘불법 도박’ 바둑인, 한국기원 이사인 아내에게 ‘6단’ 받아’ 기사에 따르면,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로 구속된 A씨가 프로기사인 아내에게 심사를 받고 한국기원 아마6단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심사와 관련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A씨의 실제 기력이 아마6단을 인허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행 단·급증 발급은 ‘사실상 영업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쿠키뉴스 취재 결과, 현재 한국기원이 발행한 5단증은 8863건, 6단증은 1186건이다.

반면 대한바둑협회는 5단까지만 심사를 통해 인허하며(6단은 대회 우승자에게 부여) 발급 비용은 12만원으로 비교적 합리적이다. 한국기원에는 심사 관련 서류가 전혀 없지만, 대한바둑협회에서는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단·급 심사 신청서’와 ‘심사활동 결과보고서’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심사활동 결과보고서를 파일철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급증 발급 문제뿐만 아니라 바둑 보급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전국 바둑대회 운영 문제 또한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프로기사들이 당초 아마추어 대회였던 지자체 후원 대회에 ‘오픈 최강부’라는 형태를 신설해 참가하면서, 한국기원으로 대표되는 프로바둑계와 대한바둑협회가 이끄는 아마바둑계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바둑 팬들 시선에서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지 않고, 서로 상생하는 공존의 모습으로 남기 위해서는 양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찾아야 한다.

2028년까지 4년 동안 대한바둑협회를 이끌게 된 하근율 당선인은 ‘친 한국기원’ 인사로 손꼽힌다. 안동시바둑협회장과 경북바둑협회장을 역임했던 하 당선인은 현재 한국기원 총재 대행을 맡고 있는 김인한 한국기원 부총재와 친분이 깊다. 지난해 새롭게 한국기원 부총재로 선임된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걸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조연우 2단이 유튜브를 통해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한 건물 매입 소식을 전했다. 프로연우 유튜브 캡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조연우 2단에 따르면, 한국기원은 정태순 신임 부총재의 기부금 ‘130억원’을 바탕으로 기존 한국기원 건물 옆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을 180억원에 매입했다. ‘한국기원 신관 대회장’으로 이름을 붙인 이 건물에서 오는 20일부터 변상일 9단과 커제 9단이 격돌하는 메이저 세계대회 LG배 결승전도 펼쳐진다. 한국기원 부총재 취임 전부터 바둑계에 ‘통 큰 기부’를 시작한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은 ‘바둑 보급’에 뜻이 있는 걸로 알려졌다. 대한바둑협회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반목을 일삼던 두 단체가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화목하게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임채정 총재 퇴임 이후 신임 총재 모시기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기원에선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을 삼고초려하고 있다. 새롭게 4년 임기를 시작한 하근율 대한바둑협회 회장 당선인과 함께 한국기원을 이끌 새 선장이 잘 화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바둑계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청원 선생은 “바둑은 조화”라고 설파했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조화로운 협력 체계를 이뤄 바둑 보급과 저변 확대에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기원해본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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