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부가 의사를 비롯한 적정 의료인력 수급추계를 논의하는 위원회 구성에 나선 가운데 수급추계기구가 지난 1년간 이어진 의정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주최하는 수급추계위원회 관련 공청회와 의대 보유 대학들의 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발표, 교육부의 의학교육 방안 발표가 잇따라 예정돼 있는 이달이 의정갈등 풀이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14일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어 관련 위원회 구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복지위는 지난달 21일 법안소위를 열고 수급추계위 구성과 역할 등을 규정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 2건과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 1건을 심사한 뒤 의료계 의견을 더 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계속 심사’를 결정했다.
수급추계위 구성 논의에 속도가 붙은 것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하는 데드라인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통상 대학 입시 정원은 전년도 2월에 결정하고 3월 말 각 대학이 정한 정원을 교육부에 제출하면 전국 대학 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4월 입시요강을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수급추계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과 인원 구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한 기간은 불과 한 달 남짓에 불과한 실정이다.
각 대학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교협 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늦어도 2월까지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해야 한다”며 “그래야 오는 5월 모든 대학의 입시요강이 공표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째 이어지는 의대생 집단 휴학에 대해선 “지난해엔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에 휴학을 받아주고 모든 걸 허용해 줬지만 올해는 작년처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도 휴학을 허용하면) 현실적으로 그 다음해 의대 교육에 무리가 따른다. 의정 합의안이 빨리 나와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원 감원까지 열어놓겠다는 뜻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과 비공개로 만나 의료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도 수차례 나서며 정원 문제를 신속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나아가 교육부는 이달 초에 의대교육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에 의대국을 설치하고 2인 1조 전담팀을 꾸려 전국 39개 의대들과 의학교육 방안을 협의했다. 의협은 올해 의대 증원으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이 불가능하다며 교육부에 의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의대 증원 철회가 전공의·의대생을 포함한 의료계의 핵심 요구였던 만큼 수급추계위 논의 테이블에서 내년도 정원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조정된다면 의정갈등 해소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의협은 수급추계위 구성과 관련해 국회 측에 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2026학년도 의대 정원 감원 조정을 위한 특례조항을 법안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다. 수급추계위는 단순 심의기구가 아닌 의결기구로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의협은 이번 달을 얽히고설킨 의정갈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협도 오는 14일 국회에서 열리는 수급추계위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낼 예정”이라며 “2026년도 의대 정원은 의정 협상의 결과로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이며, 2027년 이후의 정원 결정도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내년도 정원 문제에 대해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2월 말까지는 결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좋은 결과가 나와야 의대생, 전공의들의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안정성·전문성·중립성이 담보된 추계기구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 증원·감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는 “미래의 의료체계에 대한 국민적·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추계가 담보돼야 한다”면서 “보건의료인력 각 직역별로 위원회를 분리 운영해 정부의 호선에 따른 것이 아닌 각 직역 추천 인사로 구성해야 하며, 위원장은 의료계 추천으로 임명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수급추계위를 구성할 때 일본의 의사인력 추계기구인 의사수급분과회 운영 방식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전체 위원 22명 중 의사가 16명, 간호사 2명, 법학자·경제학자·교육학자가 각각 1명씩 참여한다.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행정 지원만 한다. 회의 내용은 녹취록과 참고자료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미래 의사인력 숫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의사의 의견이 수급추계위 논의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생생히 지켜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회의의 의사록이 상세히 작성돼야 하고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위원회의 운영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라며 “정부의 입맛에 따라 역할을 하는 위원회라면 문제의 해결은 기대하기 힘들다. 기구의 독립성과 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