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 공항에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예방을 위한 첨단 장비를 도입하고, 공항 인근의 조류 유인 시설을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원인으로 조류 충돌이 지목된 데 따른 조치다.
국토교통부는 6일 국회에서 열린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및 유가족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조류 충돌 방지 대책과 항공사 안전 점검 결과 등을 포함한 항공 안전 강화를 위한 조치를 보고했다.
조류 충돌 방지 위한 인력 및 장비 확충
정부의 예방 대책은 인력 보강, 조류 탐지·대응 장비 확대, 공항별 예방 활동 관리 제도 개선 등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먼저 공항별로 조류 충돌 예방 전담 인력을 늘려 ‘최소 2인 이상 상시 근무’ 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무안공항을 포함한 울산, 양양, 여수, 사천, 포항경주, 원주 등 7개 공항은 야간이나 주말 근무자가 1명뿐인 경우가 있었다. 제주항공 사고 당시에도 현장에는 단 한 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과 김해국제공항의 조류 충돌 예방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은 기준 인원(40명)보다 8명, 김해공항은 6명이 부족했다. 국토부 기준에 따르면 국내 공항은 활주로 개수와 운영 시간에 따라 최소 2명에서 최대 48명의 전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이달 중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자회사를 통해 40여 명을 신규 채용해 예방 인력을 19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후 오는 4월까지 공항별 조류 활동량과 충돌 발생 빈도를 고려한 새로운 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한 뒤 추가 충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장비 확충도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현재 국내 15개 공항 중 인천(4대), 김포·김해·제주(각 1대) 등 4곳에만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를 모든 공항에 최소 1대 이상 보급할 방침이다. 또한 인천공항(2대)과 제주공항(1대)에만 있는 차량형 음파 발생기도 연내 단계적으로 도입해 중대형 조류 대응 능력을 높인다.
특히 모든 공항에 조류 탐지를 위한 레이더 도입을 추진한다. 기존 육안 탐지는 최대 2km 거리까지 가능하지만, 레이더를 활용하면 약 10km 떨어진 조류까지 감지할 수 있다. 국토부는 국내 환경에 적합한 ‘한국형 조류 탐지 레이더 모델’을 개발해 시범 도입할 공항을 선정한 후, 4월부터 설계 및 구매 절차를 시작해 내년까지 본격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현재 건설 중인 가덕도신공항 등 신규 공항은 초기 설계 단계부터 레이더 설치를 반영하기로 했다.
공항 주변 조류 유인 시설 이전 추진…제도적 개선도 병행
조류 충돌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공항 주변의 조류 유인 시설을 최소화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 조류 유인 시설로 분류되는 곳은 과수원, 양돈장, 식품 가공 공장, 조류 보호구역 등 총 11개 유형이다.
현행 공항시설법에 따르면 공항 반경 3km 이내에는 과수원과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등의 설치가 금지돼 있으며, 반경 8km 이내에는 조류 보호구역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나 기존 시설을 이전하도록 강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 조항도 미비해 실효성이 낮았다. 그 결과 전국 15개 공항 주변에서 금지된 시설이 115곳이나 운영되고 있었다.
국토부는 올해 안에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각 공항의 조류 충돌 예방 활동을 연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또한 공항별로 연 2회 개최되는 ‘조류 충돌 예방위원회’ 운영도 보다 실효성 있게 개선할 예정이다.
항공사 안전 점검 강화…부실 사례에 행정처분 및 시정 조치
정부는 항공사들의 안전 관리 실태도 면밀히 점검했다. 지난달 국내 11개 국적 항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 점검 결과, 엔진 정비 절차 미준수(2건), 항공일지 정비 기록 누락(2건) 등 총 4건의 행정처분 대상 사례가 적발됐다. 해당 항공사에는 운항 정지 또는 과징금 등의 조치가 내려질 예정이다.
또한 반복적인 기체 결함 관리 미흡, 정비 인력 산출 기준 위반, 정비 기록 오류 등의 사례도 다수 확인돼 관련 항공사에 시정 지시가 내려졌다. 다만 정부는 해당 항공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개선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가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처벌이 곧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행정처분에만 집중하기보다 항공사와 소통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에어부산 기내 화재 사고를 계기로 국토부는 항공사에 ‘물 소화기’를 기내에 비치하도록 권고하는 등 안전 개선책을 추가로 마련 중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오는 4월까지 항공 안전 혁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조류 충돌 예방뿐만 아니라 국내 항공 안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항공 안전 개선 사업에 2470억원 투입 예정
이번 조류 충돌 예방 및 항공 안전 강화를 위한 사업에는 오는 2027년까지 약 247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주요 항목별 예산은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개선 200억원 ▲조류 탐지 레이더 도입 800억원 ▲활주로 이탈 방지 시설(EMAS) 설치 1200억원 등이다.
올해는 국비 약 670억원이 투입되며, 한국공항공사가 추가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항공 안전 강화를 위한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보완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