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위한 ‘장례 서비스’ 있어야 [취재진담]

‘장래’ 위한 ‘장례 서비스’ 있어야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02-12 07:35:15

저출생·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상조’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전 연령층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과거 장례식장 서비스만 제공하던 상조 서비스는 2020년대 초반부터 전자제품, 여행 상품 등을 결합해 판매하는 ‘상조 결합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최소 8년 최대 15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할부금을 납부하는 상조결합 상품은 최초 가입 당시 정한 금액을 만기까지 납부한다.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가입 시 계약했던 금액대로 납부해 경제적 혜택을 강조한다. 

또 “만기 시 100% 환급”, “가입 상담만 해도 100% 사은품 지급”, “가입 시 최신 전자제품 제공” 과 같은 문구로 소비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해 가입을 성사한다. 복잡한 절차 없이 온라인 접수, 해피콜(휴대전화)로 가입하는 상조 결합 상품은 지난 2024년까지 선수금 9조4486억원을 달성했다.

상조 업계가 몸집을 불리는 동안 정부의 감시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도 생겨났다. 미등록 업체는 고객 모집 후 폐업해 환급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가입 시 전자제품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고 속인 뒤 장기 인수형 계약을 체결해도 적절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조 결합 상품은 일반 할부거래와 선불식 할부거래가 결합한 형태인데 주로 선불식 할부거래법에 근거한 법률을 적용받는다. 선불식 할부거래법이 다루지 못하는 소비자 피해 발생 시 가입자가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미등록 후 상조 결합 상품을 판매하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에 대해 미리 점검 후 가입할 것을 권고한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사각지대를 노리는 상조회사를 사전에 적발하기 어려워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에는 “가입 시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며 “형식상 롯데렌탈과 장기 인수형 할부거래로 계약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전에 어떤 점검을 해야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소비자가 가입 후 허위·과장 판매를 인지해 상조 회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가입 순간부터 5년 동안은 전자제품 판매 기업과 맺은 계약기간이니 그쪽에 얘기하라”고 한다. 전자제품 판매 기업은 “불완전판매를 한 것은 자사가 아닌 영업사원이다. 개인의 일탈로 부정행위를 한 것은 해지의 사유가 안 된다. 증거를 가져오면 검토해보겠다”고 선을 긋는다.

‘상조 결합 상품’은 가입 시 전자제품을 제공하는 대기업, 장례·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회사, 가입을 유도하는 영업사원 모두가 주체다. 하지만 이들 중 선불식 할부거래법 적용을 받는 주체는 상조회사가 유일하다. 영업사원, 대기업은 민사소송으로 소비자가 알아서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쿠키뉴스가 만난 김나은(가명)씨는 부모님을 위해 13년형, 1000만원짜리 상조 결합 상품에 가입했다. 김씨 역시 불완전판매 피해자다. 그는 가입 직후 상조 회사가 폐업해 롯데렌탈에 전자제품 할부금만 납부하고 있다.   

김씨를 포함한 250여명의 불완전판매 상조 결합 상품 피해자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비를 들여 법적 자문을 받거나 수년 전 가입을 유도했던 영업사원을 수소문하거나 롯데렌탈에 해지 요청 메일을 보내는 식이다. 이런 노력에도 이들 중 일부는 롯데렌탈로부터 채권추심 메시지를 받아 신용 위험에 노출됐다.  

장래에 부모, 자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입한 상품이 현재 이들의 신용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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