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북한의 오징어잡이는 동해안 지역 주민들의 생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나 국제 제재, 자원 고갈, 열악한 조업 환경 그리고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등으로 인해 북한 어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초기 조업 비용 부담과 중국 자본 의존 구조는 북한 주민들을 경제적 종속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1. 북한 오징어잡이 조업 현황
청진시는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다. 포항구역, 수남구역, 신암구역, 송평구역, 청암구역, 라남구역, 부윤구역 등 7개의 구역과 93개 동, 14개 리로 이루어졌다. 면적은 1855㎢이며, 2008년 기준 인구는 약 66만명으로 집계됐지만, 실제 약 40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청진시는 북한 동해안 어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주민 상당수는 오징어 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선주는 약 9500명, 선원은 약 5만5000명에 이른다. 오징어잡이 배는 총 1만 척에 달한다. 주요 항구별 분포는 다음과 같다.
▶수남구역 어항부두: 1800~2000척
▶신암구역 6·2부두: 1500~1800척
▶신진포구: 500~800척
▶박급·낙산포구: 약 1000척
▶은혜포구·연진포구·방진포구 등 기타 포구: 약 3000척
▶기타 소규모 포구: 약 2500척
수남구역은 도매시장으로 유명한 수남시장이 있다. 어항 부둣가에는 오징어 그물과 낚시 도구를 판매하는 어항골목장이 형성되어 있다. 신암구역에는 수산물 도매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신진동과 신암동에서는 오징어를 건조해 품질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K급과 A급은 품질이 좋은 오징어로 주로 중국으로 수출된다. B급과 C급은 국내시장에 유통된다.
청진시는 북한 동해안 어업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여러 도전 과제도 안고 있다. 중국 어선들의 활발한 동해조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청진 지역 어민들은 열악한 목선을 이용해 먼바다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기본적인 장비가 없어 한해 오징어잡이 어선 20척(100명)이 풍랑을 만나 실종된다.

2. 북한 오징어잡이 실태 : 초기비용과 문제점
매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진행되는 오징어잡이는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계 수단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이 있다.
청진시의 오징어잡이 어선은 대부분 목선이다. 선장 1명과 선원 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조업에 나선다. 어선은 엔진 마력에 따라 소규모(6~8마력), 중규모(22~28마력), 대규모(30마력 이상)로 나뉘며, 중규모 어선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풍년에는 중규모 어선 한 척당 약 30톤의 오징어를 잡을 수 있지만, 흉년에는 절반 수준인 15톤에 그친다.
문제는 조업에 필요한 초기 비용이다. 목선 제작, 그물 구입, 연료비, 식량비, 그리고 부두세와 뇌물까지 포함하면 한 척당 약 420만원이 필요하다. 대부분 선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중국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청진시 부두에서 오징어잡이 어선 한 척이 출항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용이 든다.
▶목선 제작 : 200만원
▶오징어잡이 그물 15개 : 150만원
▶디젤유 200kg : 15만원
▶5인 식량(쌀) 20kg : 5만원
▶출항 서류(5명)을 위한 뇌물 : 50만원
중국의 ‘대방’이라 불리는 자본가들은 선주들에게 초기 비용을 대출해 주는 대신, 잡은 오징어를 자신들에게 판매하도록 요구한다. 오징어는 톤당 약 90만원에 중국 대방들에게 수매된다. 이들은 다시 중계무역을 통해 한국에 톤당 약 1000만원에 판매하며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결과적으로 북한 어민들은 낮은 가격에 자원을 제공하면서도 빚을 갚지 못해 경제적 종속 상태에 빠진다.
풍년이라면 빚을 갚고 수익을 남길 가능성이 있지만, 흉년에는 빚더미에 앉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는 북한 주민들이 중국 자본에 점점 더 의존하게 만든다. ‘경제적 노예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청진시 어민들의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한 정부가 중국에 돈을 받고 먼바다의 어업권을 판매하면서 자국 해역에서조차 장비가 좋은 중국 어선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주민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3. 북한 오징어 유통 구조
북한의 오징어 유통 구조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게 국내 소비와 해외 밀무역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오징어는 북한 동해안에서 대량으로 잡히며, 이를 중심으로 한 유통망이 형성돼 있다.
● 국내 소비
평양은 북한의 정치·경제 중심지로, 부유층인 돈주들이 오징어 유통의 주요 소비자와 중개자 역할을 한다.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냉동차나 버스를 통해 평양으로 운송되며, 평양시의 시장과 합의제 식당에서 주로 소비된다. 합의제 식당들은 돈주들이 운영하거나 자주 방문하는 고급 식당으로, 오징어가 술안주나 요리 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평성은 북한 내 오징어 유통의 도매 허브 역할을 한다. 오징어 도매상인들은 동해안에서 기차를 통해 운송하여 평성 새벽 도매시장, 평성시장에 오징어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다. 평성에서는 전국 각지로 오징어가 분배된다. 이곳은 북한 내에서 가장 중요한 도매 시장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 해외 밀무역
북한 오징어 유통에서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중국과의 밀무역이다. 북한은 국제 제재로 인해 공식적인 수산물 수출이 제한되어 있지만, 밀무역을 통해 여전히 중국 시장으로 오징어를 수출하고 있다.
▶청진-나진선봉-훈춘 경로: 청진에서 잡힌 오징어는 나진·선봉지역을 거쳐 중국 훈춘으로 밀수출된다. 이 경로는 동해안과 가까워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이다.
▶혜산 경로: 혜산은 북한과 중국 간 밀무역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어 밀수품 거래가 활발하며, 오징어 역시 이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간다.
▶평성-신의주-단둥 경로: 평성에 집결된 물품들은 신의주를 통해 중국 단둥으로 밀수출된다. 신의주는 북한과 중국 간 교역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오징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간다.
북한의 오징어 유통 구조는 국내 소비와 해외 밀무역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내에서는 평양과 평성이 주요 거래지로 기능하며, 부유층인 돈주들이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해외로는 중국과의 밀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청진·혜산·신의주 등 국경 지역이 핵심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
4. 자립적인 금융시스템 도입이 필요
북한 주민들이 중국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립적인 금융 시스템 도입이 필수다. 이를 위해 한국의 수협이나 농협과 유사한 형태의 어업 및 영농 금융 지원 시스템을 북한에 정착시킬 필요성이 있다.
▶지역 협동조합 설립: 각 지역에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어민들에게 저리의 대출을 제공하고, 조업에 필요한 장비와 연료를 공동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국제기구 협력 활용: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초기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 내부에서 자립적인 금융 구조를 구축한다.
▶교육 및 기술 지원: 어민들에게 금융 관리와 어업 기술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여 지속 가능한 어업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친환경 수지배 지원: 목선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수지배(fiberglass boat)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대안이다. 수지배는 목선보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유지비가 적게 들며 연료 효율성이 높아 환경 보호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업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오징어잡이는 주민 생계와 지역 경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여러 구조적 문제들로 인해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자립적인 금융 시스템 도입과 친환경 어선 지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남북 간 협력을 통해 이러한 방안을 실행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독립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