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연이은 투자 실패와 ‘먹튀’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는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 했지만, 기업회생 개시를 선언하며 경영 실패를 자인했다. 이런 가운데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개입과 CJ바이오 인수 추진 등 공격적 확장 모습에 일각에서는 사모펀드(PEF)의 본래 역할에 대한 의구심까지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회생’ 내몬 MBK
홈플러스는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MBK에 인수된 지 10년 만이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강등된 이후,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잠재적 자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상황에서 자구책을 찾긴커녕 기업회생부터 신청했다는 점에서 책임론이 거세다.
MBK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으로 자금을 마련해 기업을 인수하고 차익을 실현하는 사모펀드다. 잠재력을 가진 기업을 인수해 성장시키고,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이윤을 남겨 팔아 자금을 회수하는 식이다.
같은 방식으로 MBK는 지난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 2조7000억원은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인수금융(대출)을 받아 조달했다. 인수금융 중 1조2000억원은 홈플러스가 차입하기로 했다.
홈플러스 기업 가치는 MBK에 인수된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이를 두고 MBK가 홈플러스 인수 후 기업 가치를 높이는 전략보단 자금 회수에 집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K 인수 이후 14곳의 홈플러스 점포가 문을 닫았다. 3조4000억원을 확보해 투자금을 회수했다. 매각된 점포들은 대부분 장사가 잘되는 점포로 이는 매출 하락과 수익성 악화를 불러왔다.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하며 유통업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오프라인 매장의 성장률이 둔화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운영 비용은 늘어나고, 장기적인 경쟁력을 약화한 꼴이 됐다.
홈플러스는 지난 2021년부터 영업(1335억원)손실을 내며 적자의 늪에 빠졌다. 2022회계연도 (2022년 3월~2023년 2월) 2602억원, 2023회계연도(2023년 3월~2024년 2월) 199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MBK가 유통업체인 홈플러스를 운영해 기업 가치를 제고할 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경영능력이 없는 MBK가 홈플러스 자산 매각을 통해 이익 실현에 집중했다는 먹튀 논란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기업회생…‘마이너스의 손’ 된 MBK
MBK가 인수했다가 경영 고비를 맞았던 기업은 홈플러스가 처음이 아니다. 아웃도어 전문업체 네파는 2013년 MBK 인수 이후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다. 인수 시점인 2013년 당기순이익 1052억원을 내는 건실한 회사 였지만 2023년에는 당기순손실이 1054억원에 달했다. 인수 당시 MBK는 4800억원가량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는데 인수 이후 특수목적법인(SPC) 티비홀딩스를 네파와 합병시켜 네파는 현재도 매년 200~300억원대 이자 부담을 떠안고 있다.
MBK가 최대주주인 롯데카드의 상황도 좋지 않다. 롯데카드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642억원으로 전년(3748억원) 대비 56.2% 감소했다. 특히 최근 롯데카드가 보유한 팩토링 채권에서 786억원 규모의 부실이 발생해 내부통제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플랜트 제조업체 영화엔지니어링은 홈플러스 사례와 닮은 꼴이다. MBK는 2009년 영화엔지니어링을 1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영화엔지니어링은 국내 강구조물 시공 능력 평가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하던 기업이었다. MBK 인수 후 회사 경쟁력은 급격히 악화됐다. MBK가 기술력 강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보단 투자금 회수를 위해 단기 실적에 치중하면서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수주 활동도 어려워졌다. 2012년 2673억원이었던 매출은 2015년 838억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손실은 126억원에 달했다. MBK는 201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듬해 496억원을 받고 회사를 유암코(연합자산관리)에 팔았다. MBK 손을 떠난 영화엔지니어링은 유암코의 자금 지원으로 약 1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졸업했다. 또한 사업구조 재편 등을 거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홈플러스 사태가 벌어진 와중에도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고 CJ바이오 인수를 추진하는 등 외형 확장에 나선 점도 논란이다. 바이아웃을 목표로 단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모펀드식 경영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업과 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는 반한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통산업 측면이나 채권자 입장에서 MBK가 굉장히 안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며 “홈플러스 사태만 보면, (MBK가) 빚을 갚기 위해 알짜 사업을 전부 매각하면 사업의 영속성이 사라져 버렸다. 홈플러스가 제 살을 깎아 먹는 동안 사모펀드는 큰 손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가 지금까지 성장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갔는데 (PEF가) 단순히 돈의 논리에서 판단하는 부분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기업 환경 상황을 보면, 전통적인 오너 기업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고, 외부 펀드가 유입된 기업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적어도 오너라면 당장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이 갈 길을 선택하지 MBK처럼 단기간에 빚 갚고 빨리 엑시트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사태, 금융권도 일파만파
설상가상 홈플러스가 회생신청 직전까지 기업어음(CP)을 찍어내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비판까지 확산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회생 직전인 2월21일에도 7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했다. 막판까지 발행한 CP는 금융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MBK 측은 금융투자자 피해는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ABSTB와 CP 등을 리테일 투자자에게 판매한 주체는 증권사들로, 홈플러스는 해당 상품 판매와는 무관하다. 회생 신청 후에야 리테일로 판매된 것을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증권업계 상황은 심각해졌다. 홈플러스 신용 위험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아 ‘불완전 판매’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홈플러스의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 발행 주관사인 신영증권은 “CP 또는 ABSTB 증권이 리테일 창구로 판매됐을지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도 반박했다. 더불어 최악의 경우 MBK 법적 대응까지 검토 중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MBK와 같은 바이아웃 펀드가 경영 실패를 한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으나 법적으로 처분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도 “회생 신청을 알고도 (CP 또는 ABSTB 증권) 발행했다면, 자본시장법 등으로 따져 문제 소지가 있는지 금융감독원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