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허브공항’에 몰려드는 진객 흑두루미

‘천수만 허브공항’에 몰려드는 진객 흑두루미

멸종위기 국제적 보호종인 흑두루미 만여마리 깃들어
중간기착지 천수만 모여 체력 보충하며 북상 준비
서산시, 먹거리와 잠자리 무료제공 서비스

기사승인 2025-03-13 14:24:33
‘안전하고 먹거리 많은 천수만 찾아왔어요’
일본 이즈미현과 순천만에서 겨울을 보낸 흑두루미는 현재 천수만에서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 받고 있다. 이들은 충분한 휴식과 영양분을 축적한 후 번식을 위해 다시 시베리아 바이칼호 부근, 몽골, 중국 동북 지방 쪽으로 이동한다.
 

“먹거리와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 천수만을 찾는 흑두루미는 계속 느는데 곳간은 하루가 다르게 비어가서 잠을 못자요”



“먹이가 부족해요” 
흑두루미 먹이 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신환 원장은 “먹이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다행히 한국조류보호협회와 개인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올해는 겨우 버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국가유산청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올해 먹이 지원 예산을 아예 배정하지 않았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세계적 보호종인 흑두루미 보호에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천수만에 모여든 흑두루미는 약 1만여 마리에 이른다. 이들이 하루에 필요한 볍씨는 최소 2톤 이상이지만, 개체 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식량 부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서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김신환 원장은 “흑두루미들이 점점 더 천수만을 일찍 찾고 늦게 떠나는 경향이 있지만, 먹이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17년째 천수만에서 흑두루미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보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박사는 “천수만은 넓은 농경지와 풍부한 먹이로 인해 장거리 이동을 준비하는 흑두루미들에게 최적의 중간기착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흑두루미 무리는 낮 동안 약 300~400km를 비행하며, 천수만에서 출발해 중간중간 쉬면서 번식지로 향한다. 번식지의 동토가 녹고 새싹이 돋을 시점에 맞춰 도착한다”고 말했다. 흑두루미는 주로 나무숲에서 번식하며 한 번에 평균 두 마리의 새끼를 키운다. 이들은 대개 3월 하순이면 북상한다.

3월이 되어 경칩이 지나고 농사철이 다가오면서 겨울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에 분주하다. 순천만과 일본에서 겨울을 보낸 흑두루미들 역시 천수만에 모여들었고, 일부는 이미 북상을 시작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천수만을 찾는 철새들을 위해 국가유산청과 서산버드랜드, 김신환동물병원, 한국조류보호협회, 천수만도래지지킴이단은 이들을 위해 볍씨를 비롯해 먹이를 공급하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육지부와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천수만은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다. 1984년 간척사업 당시 방조제로 막히면서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와 부남호가 형성되었고, 주변에 6,400ha에 달하는 광대한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초창기 현대가 이곳을 관리할 때는 넓은 농경지에서 낱곡이 많이 떨어져 새들의 먹이가 풍부했다. 그러나 농경지가 농민들에게 분양된 후 볏짚을 모두 수거하는 곤포 사일리지가 등장하면서 새들의 먹이와 쉴 공간이 부족해졌고, 결국 종수와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 충남 서산 천수만에서 힘차게 날개짓 하는 흑두루미 가족

현재는 서산시와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새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특히 흑두루미의 중요한 중간기착지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한성우 서산버드랜드 주무관은 “올해도 일찌감치 천수만에 흑두루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차 이곳을 찾는 개체 수가 늘면서 혹시 모를 집단 감염에 대비해 두 곳에 나누어 먹이 주기를 하고 있다”면서 “현재 환경부 생태계서비스지불제 계약사업으로 무논 조성과 볏짚 존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농어촌공사는 대체 서식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등 새들이 안심하고 천수만을 찾을 수 있도록 생태공간 조성사업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천수만 비경 “떠오르는 붉은 해 주위로 흑두루미 춤추다”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꾸르륵, 꾸르륵' 소리를 내며 먹이를 먹다가 일순간 날아오르기도 하고, 파란 하늘을 무리지어 날다가 비행기가 바퀴를 내리며 안착하듯 접었던 다리를 펴고 동료들 사이로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은 장관이다.
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해 서산시와 환경부, 국가유산청은 겨울무논 조성, 볏짚존치사업, 겨울철 먹이주기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해뜨기 전 흑두루미의 먹이터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면 천수만 넓은 들판의 무논(물댄 논)에서 지난밤을 보낸 흑두루미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붉게 떠오르는 아침해 사이를 오가며 춤추듯 선회비행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이들이 밤새 굳어진 몸을 충분히 아침 해에 녹인 후 안개와 오렌지빛이 섞인 들녘을 배경으로 먹이터로 내려앉는 모습은 이 시기 천수만에서만 볼 수 있는 대자연의 황홀경이다.

흑두루미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멸종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취약(VU) 등급으로 지정된 종이다. 국내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보호받고 있는 겨울철새이다.

다른 두루미에 비해 비교적 체구가 작은 흑두루미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다.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새들의 지시에 따르고, 무리 내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하여 살아간다. 한 마리가 ‘꾸르르, 꾸르르’ 경계음을 내면 먹이활동을 하던 개체들도 동시에 머리를 들어 주위를 살피고, 이동하거나 날아갈 준비를 하는 등 단체 행동에 익숙하다.
흑두루미는 천수만의 넓은 들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도 무리지어 뜨고 내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세계적 풍경이다. 이 같이 멋진 장면들을 담기 위해 초망원렌즈로 무장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가들은 카메라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기자가 천수만을 찾은 지난 주말에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흑두루미 촬영을 위해 초대형 망원렌즈를 차창 밖으로 내밀고 흑두루미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생태 촬영에 미숙한 초보 사진가들은 차에서 내려 흑두루미에 접근하거나, 들개들이 나타나자 흑두루미들이 놀라 날아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무리지어 있는 대형 조류가 준비 없이 갑자기 날게 되면 날개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며, 먹이활동에도 큰 지장을 준다. 따라서 흑두루미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너무 가까이 접근하거나 큰 동작을 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흑두루미와 동거하는 검은목두루미 가족'
한종현 버딩투어 대표는 “천수만은 흑두루미들이 월동을 마치고 북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간 기착지이다. 캐나다 두루미나 검은목두루미 일부 눈에 띈다”면서 “인위적인 먹이제공이 야생성을 뺏는 문제가 있기도 하겠지만 종 자체가 국제적 보호종이라 개체수 유지를 위한 먹이제공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수만을 찾은 용환국 사진가는 “천수만은 사계절 조류 촬영 명소여서 즐겨찾는다. 더욱 3월은 만여마리의 흑두루미가 몰려와 사진작가나 탐조인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면서 “모쪼록 번식지에서 새끼들 건강하게 잘 키워서 다시 만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겨울진객 흑두루미 군무'
서산시 고북면과 부석면 천수만 간척지에서 12일 확인된 만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화려한 날갯짓과 독특한 울음소리로 탐조객과 사진가의 탄성을 자아냈다. 흑두루미는 두루미류에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의 보호종으로 동부 시베리아, 만주, 몽골 등지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 등지에서 겨울을 보낸다.

한국물새네트워크가 12일 조사한 천수만의 흑두루미 개체 수는 대략 1만1천 마리로, 이는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 수 2만여 마리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이미 이곳을 떠난 흑두루미와 아직 천수만에 도착하지 않은 개체까지 감안하면 최소 80% 이상의 흑두루미가 천수만을 중간기착지로 삼고 있다.
서산버드랜드는 휴경지에 철새 먹이를 재배해 30톤을 공급했으며, 농경지에 모래톱과 습지를 조성해 철새 도래를 유도했다. 환경부는 감소하는 서식지와 먹이터를 지키기 위해 '생태계서비스지불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자연생태계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해 보전 행위를 보상하는 방식이다. 흑두루미들은 서식지 환경이 점차 나빠지고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먹이가 풍부하고 비교적 안전한 천수만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특히 서산시는 흑두루미의 안전한 잠자리를 위해 매년 무논을 늘려가고 있다. 농사가 끝난 논에 물을 대면 흑두루미가 삵 등 포유류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다. 
천수만의 하늘을 흑두루미 무리가 날고 있다.

흑두루미들은 천수만에서 충분히 영양을 보충하고, 서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 대부분 3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시베리아 등 북쪽으로 떠난다. 하지만 아직 번식을 하지 않는 4년생 미만의 어린 흑두루미들은 천수만에서 머물다가 4월에야 고향으로 향하기도 한다. 설령 부모를 따라 번식지로 돌아가더라도, 부모들은 새로 태어날 동생들에게 집중해야 하므로 어린 개체들은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어린 흑두루미는 태어난 지 1년 안에 독립한다.
충남 서산의 천수만에서 세계적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이곳에 국제적 보호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일만여 마리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흑두루미들은 지난달 말부터 고북면과 부석면 간월도리 일원에서 휴식과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12일 천수만 흑두루미 개체 수 및 생태조사에 나선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박사는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흑두루미 먹이터에 트랙터가 오가고, 흑두루미의 이동이 많아져 개체 수 파악이 어려웠다”면서도 “하지만 흑두루미에게는 아직 이곳만큼 좋은 먹이터와 쉼터가 없기 때문에 충분히 영양을 보충하고 쉬었다가 무리지어 떠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위기나 개발로 인해 새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천수만이 인간과 새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야생생물II급이자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된 보호조다.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VU)으로 분류돼 국제적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흑두루미를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한바 있다. 

서산=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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