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의 압박과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대출 금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려는 당국의 기조에 변함은 없다.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낮추면서도 부채 관리를 병행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18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2월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조3000억원 증가했다. 1월 감소세를 보였던 가계대출이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5조원 늘어나 지난해 10월(5조5000억원) 이후 가장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은 이사철을 앞둔 실수요자들의 대출 수요 확대와 은행권의 대출 문턱 완화다. 여기에 최근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 일대의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이 해제되면서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토허제 해제 이후 이들 지역의 주택거래량은 해제 이전 대비 50% 급증했고 일부 아파트 거래는 신고가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20% 상승하며 4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강남 4구가 포함된 동남권은 0.58% 올라 2018년 9월 이후 6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이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경기 회복을 동시에 챙기려다 보니 되레 시장의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연초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서자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달 말부터 주담대 가산금리를 0.1~0.3%p씩 줄줄이 낮췄다. 여기에 서울 일부 지역의 토허제 해제가 맞물리면서 대출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대출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3단계를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면 대출 가능액이 줄어든다. 지난해에도 당국이 7월 도입할 예정이던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를 9월로 연기하면서 7~8월 대출 수요가 몰려 가계대출이 폭증한 바 있다.
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올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1~2% 수준으로 제한한 탓에,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낮추면서도 부채 관리를 병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새로운 규제 시행 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출 한도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고객들이 급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를 고려하면 은행들도 무작정 대출을 늘릴 수 없어 리스크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율을 매월 점검하며, 분기별로 금융당국과 협의해 대출 총량을 조절하기로 했다. 또 가격이 단기 급등한 서울시 일부 지역의 주택 관련 대출을 취급할 경우 향후 리스크 수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점검하고 있다. 가급적 실수요자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역시 부동산 규제가 완화된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면밀한 모니터링에 나설 방침이다. 당국 관계자는 “3월 들어 주담대 실행이 감소하는 추세를 고려할 때 아직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관계 부처와 협력해 지역별 주택시장과 주택담보대출 추이를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