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훈현 국수도, 그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의 가족도 만족한 영화 ‘승부’가 26일 개봉했다.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로 사장될 뻔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지난 2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부’는 대한민국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이병헌은 실존 인물을 연기한 소감으로 “기댈 수 있는 부분과 자유롭지 못한 부분, 양면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며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며 그분의 외형, 눈빛, 여러 가지 버릇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자유롭게 놀기에는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조훈현을 만나 관찰한 면모들을 “내 것”으로 소화해 냈다. 당시 2대 8 가르마와 다리 떠는 습관을 모사한 것은 물론, 제자 이창호와 프로로 맞붙게 되면서 요동치는 감정선을 직접 겪은 것처럼 그려냈다. 조훈현마저 시사회 당일 그를 보자마자 “나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연기를 위해 신경 쓴 지점은 또 있었다. 바로 손짓이다. 오목은 즐겼지만 바둑을 전혀 몰랐다는 이병헌은 “출연을 결정하고 다음날 바둑판을 집에 갖다 놓았다”며 “다른 바둑알을 건드리지 않고 거침없이 바둑알을 놓는 손짓을 능숙하게 연습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바둑판을 들이게 되면서 일상도 소소하게 바뀌었다. 올해 10살인 아들과 함께 오목을 두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이번 작품을 상당히 재밌게 봤다고 한다. “아들이 제일 처음 본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고, 얼마 전에 ‘공동경비구역 JSA’를 봤어요. ‘승부’를 세 번째로 본 거죠.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승부’가 1등이래요.”

바둑 팬인 장인어른 역시 호평했다. 다만 이병헌의 연기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 재밌게 보셨다면서, 감독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술적으로 당시 분위기를 잘 살렸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제 연기 칭찬은 안 해주셨어요.”
이병헌은 촬영 때부터 ‘승부’의 높은 완성도를 직감했다. 연기는 무엇보다 함께하는 배우들의 합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바둑은 승과 패로 갈리지만, 연기는 옆에서 누군가가 뛰어난 연기를 해줘야 나도 같이 빛이 나요. 같이 하는 배우가 잘하면 나도 덩달아 신나서 끌어올려져요. ‘이 영화 진짜 잘되겠다’라는 설렘이 있죠. 이번 작품도 그랬어요.”
극 중 이병헌과 사제 호흡을 맞추며 제 몫을 훌륭히 해냈지만, 작품에 치명상을 입힌 유아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병헌은 “어릴 적 창호가 통통 튀는 느낌이다가, 갑자기 성인 창호가 돌부처로 나온다”며 “실제 현장에서도 자기 캐릭터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건지, 굉장히 과묵하고 조용했다”고 회상했다. “현재로서 가장 힘든 건 그 친구일 것”이라며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승부’는 당초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이야기상 덜어낼 수도 없는 주연 유아인의 논란으로 ‘창고 영화’로 전락할 뻔했다. 그리고 촬영을 마친 지 4년 만에 투자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어릴 적부터 영화와 극장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이병헌은 오히려 반색했다.
“감독님이 ‘승부’를 극장용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으로 알아요. 원점으로 다시 온 거죠. 개인적으로는 신나요. OTT로 가면 전파력이 크니까 나름대로 장점이 있죠. 하지만 역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극장이 확실히 좋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나를 극장으로 데려가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커요. 그땐 극장 특유의 냄새가 있었어요. 오징어나 땅콩 구운 냄새, 스크린 아래에서 쓱 올라오는 담배 연기, 저한테는 향수로 남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