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준 씨, ‘폭싹 속았수다’ [쿠키인터뷰]

배우 박해준 씨, ‘폭싹 속았수다’ [쿠키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박해준 인터뷰

기사승인 2025-04-02 06:00:11 업데이트 2025-04-02 14:41:03
배우 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아내와 자식에게 헌신하며 닳아가는 ‘무쇠’ 관식의 일생을 참 애달프게도 그렸다. 그를 보고 저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배우 박해준이 아닌, 모두의 아버지였다. 다 임상춘 작가의 대본 덕분이란다. 하지만 4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와 마주하니, 그의 겸손 어린 진심에 더 동감할 수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제목처럼 참으로 고생했을 그를 1일 서울 장충동2가 앰배서더 서울풀만호텔에서 만났다.

박해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 관식을 연기했다. 관식은 아내 애순(문소리)이 여전히 제일인 남편이자 아기 같은 딸 금명(아이유)과 아픈 손가락인 아들 은명(강유석)의 아빠로서 중년기를 보냈다. 청년 관식으로 분한 박보검의 배턴을 이어받아, 세월의 무게가 더해진 인물의 일대기를 깊고 진하게 풀어냈다.

그에게 ‘폭싹 속았수다’는 배우로서도 시청자로서도 애틋한 작품이다. “좋은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한다. “이처럼 감동적인 드라마에 출연해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어르신부터 또래, 젊은 친구들까지 남다르게 칭찬해 주세요. 저한테 고맙다고 하세요. 어떻게 드라마로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지(웃음). 밉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파냐고요. 마냥 즐겁지는 않았어요. 드라마 여운이 너무 셌어요.”

살면 살아진다고들 하지만,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관식과 애순의 삶에는 많은 이의 사랑이 있었다. 엄마마저 잃은 애순을 업어 키운 잠녀 이모들, 바닥을 겨우 덮을 만큼 얕게 쌀통을 채워준 주인집 부부…. 다 얘기하기도 힘들다. 박해준은 이런 지점에서 눈물을 흘렸다며, 드라마 오프닝 삽화를 언급했다.

“애순을 향한 마음이 보이는 장면들이 너무 따뜻해서, 그 순간들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오프닝 그림도 보면 짠한 게 있어요. 여러 손이 비를 막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두 사람이 끝까지 살게끔 하는 마음들이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살면 살아진다는 대사도 있잖아요. 내레이션들도 정말 기가 막혔죠. 자막만 봐도 재밌을 거예요.”

시청자에게는 박해준이 숨을 불어넣은 관식의 장년이 눈물 포인트였다. 이 같은 반응을 듣고 수줍어하던 박해준은 이 모든 게 대본의 힘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관식만 놓고 봤을 때, 그 작품에서 그 대본을 가지고 연기를 못 할 배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배우가 와도 내뱉기만 하면 관식 같은 느낌이 있었을 거예요. 작가님이 너무 잘 만들어주셨죠.”

진담이었다. 대본을 읽은 후부터 출연 확정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감독님이 대본을 보시는 눈이 훌륭해서 너무 기대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품은 한다는 마음이 있었죠. 대본을 봤는데 ‘와, 이걸 내가 할 수 있다고? 이걸 나한테 준다고?’ 할 정도로 믿을 수 없었어요. 무조건 한다고 했죠. 상대 배우 캐스팅이 안 됐을 때였는데, 어떤 배우인지에 따라서 제가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숨죽이고 있던 시간이 있었어요.”

배우 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그렇게 만난 파트너는 극단 선배 문소리였다. “작업을 같이 하진 못했지만 뒤풀이 자리에서나마 멀찍이 지켜봤던 선배님이랑 같이 호흡을 맞추게 돼서 영광스러웠어요. ‘잘해왔습니다’ 하고 인정받는 느낌도 들었고요.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알았던 것 자체가 작품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애순과 관식도 그렇잖아요. 어릴 때를 알고 한 집단에 있었어서 그런지 동질감이 생겨서 편했어요.”

현실에서는 두 아들의 아버지지만, 작품에서는 그저 ‘딸바보’였다. 선배 연기자로서도 극을 훌륭히 이끈 아이유가 기특한 모양이었다. “정말 잘해줬어요. 뭐 하나 던지면 리액션을 너무나 잘해주는 배우였어요. 리딩 때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나의 아저씨’에서도 잘했지만, 이 작품은 (세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이렇게 잘하리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금명이는 금명이대로, 애순이는 애순이대로 잘했어요. 힘내라고 많이 까불거렸는데 지금 돌아보니 부끄럽네요(웃음). 만만하게 대할 친구가 아니에요.”

캐릭터의 인생을 나눠 가진 박보검에게는 감사를 표했다. “매번 얘기하는데 저는 보검 씨가 깔아준 판에 발을 얹은 거예요. 너무 고마워요. 1~2막을 보는데 제가 보검 씨 미래로 잠깐 나올 때마다 너무 다행이다 싶었어요. 저한테 보검 씨의 잔상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만큼 보검 씨가 잘한 거고, 제게 참고할 데이터가 됐던 거죠.”

김원석 감독, 임상춘 작가, 출연진, 스태프까지, 함께한 이들에게 거듭 공을 돌렸다. 하지만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박해준의 노력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투병으로 사그라드는 관식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을 불사했다.

“격투기 선수가 체중을 조절하는 방법을 참조했어요. 드라마 촬영은 영화처럼 기다려주지 못하잖아요. 드라마는 당장 전날까지 다른 장면을 찍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신 촬영 전 3일 정도만 촬영을 빼달라고 했어요. 7kg을 감량했는데 살보다는 수분을 뺐어요. 추천할 수 없지만, 작품을 보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외형도 외형이지만, 진짜 힘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함께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죠.”

소품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 일례로 관식이 늘 메고 다니는 가방이 있다. “의상팀이 준비해 줬는데 계속 메고 다니겠다고는 제가 말했어요. 계속 챙기고 싶었어요. 왠지 관식한테는 굉장히 오래된 가죽 지갑이 있을 것 같고, 늘 챙기는 수첩도 있을 것 같고 그랬어요. 버스정류장에 가져온 크로스백인데 쭉 메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처럼 작정하고 울려놓고, 시청자에게 인사해 달라는 요청에는 “너무 많이 우시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선물을 해드린 것 같다”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내비쳤다. 

“통증도 후유증도 있는 작품이에요. 넷플릭스로 공개됐다 보니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데, ‘폭싹 속았수다’가 플랫폼을 잘 만난 것 같아요. 세대가 바뀔 때마다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보이는 것도 다를 거예요. 힘들 때 한 편씩 꺼내 보면 좋은 이야기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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