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작 ‘승부’ 실제 주인공 조훈현 9단이 “이병헌 배우 연기에 감탄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또 다른 실제 주인공인 제자 이창호 9단에게는 “제가 가르친다고 해서 바둑으로 세계 일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의 스승인 제가 창호에게 더 고맙게 생각한다”고 여전한 제자 사랑을 과시했다.
영화 ‘승부’는 세계 바둑 최고 레전드로 손꼽히는 조훈현 9단이 제자 이창호 9단과 사상 초유의 ‘사제 도전기’에서 패퇴한 이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 번 정상에 도전하는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영화 ‘승부’는 전국 국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김형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바이포엠스튜디오가 제공·배급을 맡았다. 영화사월광과 BH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했다.
다음은 조훈현 9단과 일문일답.
Q. 바둑계를 뒤흔든 세기의 대결, 사제 대결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는지.
A. 처음에는 과연 이 바둑을, 이 얘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실 바둑 자체는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거라 그려내기 굉장히 힘들다. 다른 운동 경기, 예를 들어 격투기 같은 종목은 비교적 표현하기 쉬울 텐데 바둑은 머릿속에서 진행이 되는 걸 끄집어내야 하는 종목이다. 이게 얘깃거리가 될까, 그런 게 걱정이 됐다.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이 제 실명으로 나가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까, 그것도 걱정이 됐다.
Q. 영화를 보고 난 후 첫 느낌은?
A.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이병헌 배우가 굉장히 연기를 잘해주셔서 뜻은 잘 전달이 된 것 같다.
Q.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 어떻게 보셨는지.
A. 저를 잘 표현했다. ‘어? 이거 내가 옛날에 저랬는데? 저런 분위기였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분위기에 알맞게 연기했다는 게 대단하고, 명연기라는 생각이 든다.


Q. 영화 속 조훈현의 의상은 어떻게 보셨는지. 실제 모습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 등 주변 반응을 예측해 보신다면?
A. 옷에 많이 신경 써서 촬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저는 당시에 의상은 신경을 안 썼고, 보통 아내가 다 해줬다. “이거 입어” 그러면 그걸 입고 나가고 그랬다. 영화 보니까 옷이 자주 바뀌더라. 지인들보다는, 바둑을 모르고 조훈현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분들의 반응이 더 궁금하다.
Q. 영화에서 표현된 조훈현과 실제 조훈현의 가장 닮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꼽는다면?
A. 제가 스승님에게 배운 게 있다. 그걸 그대로 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거다. 그 길로 가게끔. 영화를 보니까 야단도 치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 창호가 알아서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제가 영화에서처럼 잘 가르친 건 아니다.
Q. 사제지간 대국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은?
A.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 거의 비슷하게 그려냈다. 경기에 졌을 때 아픔이라든가, 싸울 때 아픔이라든가. 사실 저로서는 그걸 어떻게 그릴 것인가,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아주 잘 하신 것 같다. 물론 영화가 실전을 똑같이 그려내진 못하지만, 대부분 잘 그려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Q. 실제 영화 주인공으로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또는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A.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자 이창호를 가르치는 과정과 그 장면들이 마음에 들었다.
Q.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바둑 기사이자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다. 과거 승부의 첫째 조건은 ‘기세’이며, 승부사라면 어떤 승부에서도 기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2025년 조훈현 국수도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A.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섰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다를 거다. 그때는 사실 최정상을 위해서만 공부를 했고, 싸워왔고, 젊었다. 자신도 있었고 해야만 했기 때문에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따라 주지 않는다. 지금 젊은 분들에게는 패기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뭐든지 배우고 노력하다 보면 앞으로 나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Q. 스승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창호 역시 조훈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돌이켜봤을 때 한 인간으로서, 동료이자 후배 바둑 기사로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나.
A. 제가 뭘 가르친 것도 없는데, 바둑으로 세계 일인자가 됐다. 제가 가르쳤다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스승인 제가 더 고맙게 생각한다.


Q. 바둑을 통해 배운 인생의 태도와 깨달음이 있으시다면.
A. 깨달음이라는 게 끝이 없다. ‘여기까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거기를 돌파하면 또 다른 벽이 막힌다. 여기까지 오면 된다, 이것만 깨달으면 된다,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사람 나름의 벽이 있고 한계가 있다. 그러니 끝없이 배우는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과연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깨달았느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그게 제 자신도 가장 궁금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저는 계속해서 내 길로 전진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Q. 기자간담회 때 이병헌 배우가 드라마 ‘올인’ 차민수, 영화 ‘승부’ 조훈현이라는 리빙 레전드를 모두 연기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A. ‘올인’이라는 드라마로 차민수 사범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이병헌 배우가 연기를 아주 잘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액션 쪽으로 아주 재밌게 봤다. ‘승부’의 바둑은, 말이 승부지 실제로는 내면적인 싸움이다. 이런 연기도 완벽하게 해내는 걸 보니 역시 연기력이 대단하시다.
Q. 휘호로 사용하신 ‘無心(무심)’이라는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A. 무심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다. 바둑은 조화다. 욕심을 안 내고 타협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게 무심이다. 세상도 조화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영화 ‘승부’ 관객들에게 추천 한마디.
A. 재미도 있고 가슴을 울리는 대목도 있다. 많이 봐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