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은행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표심 공략을 위한 은행권 압박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 등 국회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5명(이헌승·유영하·김재섭·강민국)은 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5대 시중은행장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환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농협은행장이 참석했다. 지역은행 대표로는 백종일 전북은행장이, 인터넷전문은행 대표로는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가 자리했다.
윤 위원장은 “예상치 못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많이 듣고 반영할 것”이라며 “현 경제 상황이 엄중해 여러분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운을 띄었다. 이어 정치권 개입 논란을 사전 차단하려는 듯 “은행권에 (정치권의) 요구사항을 쏟아내기보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왔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이 은행권과의 접점을 넓히는 움직임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대 은행장들을 국회로 불러 원리금 상환 부담 완화, 수출입 기업 유동성 지원 확대 등의 민생 현안을 논의했다.
야당 대표가 시중은행장들을 직접 호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대표가 지난 2023년 은행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추진했던 만큼, 대선 유력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해 금융권을 이용·압박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대표는 “금융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들어보고 정치권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들어보려고 하는 자리”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정치권의 설명과 달리, 금융권 안팎에선 이를 ‘정중한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솔직히 안 부담스럽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일종의 압력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결국 ‘우리가 다시 여당이 될 수 있으니 앞으로 잘해라’, ‘우리가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은근히 보내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조기대선이 현실화하면서 ‘금융권 옥죄기’가 거세질 것이란 시선도 있다. 특히 상생금융의 정례화, 횡재세 논의 재점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앞서 은행들은 3년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총 2조원 규모의 채무를 조정하는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별도로 약 2조원 상당의 이자 환급 등도 단행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금융권의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조기 대선이 시작된 만큼 여야가 앞다퉈 민생 회복을 명분으로 포퓰리즘성 정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고, 그 무게감도 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시중은행장 소집은 대선 정책 행보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조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은행권을 향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노골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