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을 방문해 상호관세 등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고 10% 기본관세만 부과하기로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 본부장은 9일(현지시간) 주미대사관에서 가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금번 유예 조치는 미국 측과의 관세 협상을 지속해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그는 미국이 중국에 125% 관세를 부과한 것을 두고 “우리 기업의 대중(對中) 수출 및 풍선효과로 우리의 제3국 수출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신속한 대미 협의 등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풍선효과는 미국의 관세 장벽으로 인해 대미 수출길이 막힌 중국산 제품이 한국과 주변국으로 덤핑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정 본부장은 방미 기간 미국 측과 협의한 결과, 미국 측은 앞으로 미국무역대표부(USTR), 재무부, 상무부가 상호 연계해서 한국과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전날 이뤄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를 통해 “미국과 관세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우호적 모멘텀(동력)이 형성되고 협상을 위한 큰 틀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미국과의 협상은 단판 승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속적인 대화와 끈질긴 설득, 민관의 노력 등이 어우러져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본부장은 전날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를 만나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25% 상호관세, 철강과 자동차에 부과한 25% 관세에 대해 관세 인하 등 ‘특별한 대우’를 요청했다.
이날에는 상무부의 윌리엄 키밋 국제무역 차관 내정자와 제프리 케슬러 산업안보국(BIS) 차관을 만나 미국의 품목별 관세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대해 안정적인 지원을 당부하는 한편 공급망 및 경제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이들 협의에서 미국이 이날 상호관세를 유예할 수 있다는 징후는 포착하지는 못했다. 정부는 상호관세가 모든 국가에 똑같이 적용되는 품목별 관세와 달리 국가별로 상이하고,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을 받았다는 점에서 상호관세를 가장 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으로 판단해 왔다.
아울러 정 본부장은 미국 측과 무역수지 문제, 조선 협력,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을 비롯한 에너지 협력을 논의했지만, 구체적으로 진전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리어 USTR 대표는 전날 의회 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앞으로 무역 협상에서 순수한 통상 현안 외에 경제안보 문제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