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거래소가 복수의 은행과 실명계좌 연결 제휴를 맺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은행권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가상자산 법인계좌 발급이 가능해지면서 은행들이 거래소 제휴 확대를 통해 수익 기반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9일) 열린 국민의힘과 은행권 간담회에서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1거래소-다자은행’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 현행 1거래소-1은행 체제는 시스템 안정성의 리스크와 소비자 제한, 법인 계좌 발급 제약 등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상자산 거래에는 원화 입금 계좌가 필요해 거래소는 은행과 계약을 맺고 고객들에게 전용 실명 계좌를 발급한다. 현재는 은행과 가상자산거래소 간의 독점 계약 구조 아래에서 가상자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여러 은행에서 거래가 가능해질 경우 현금 거래가 분산되면서 제대로 신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금융정보법에서 하나의 거래소가 제휴할 수 있는 은행의 개수를 정하고 있지는 않다.
은행들이 거래소 유치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제휴를 통해 수익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거래소와 제휴한 은행은 이용자들을 신규 고객으로 흡수하면서 자연스레 대규모 예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이 자금 운용을 통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다. 지난해 7월 말 기준 업비트의 예치금은 3조7331억원으로 케이뱅크 수신 잔액의 16.8%에 달했다. 이외에도 빗썸 1조399억원, 코인원 729억원, 고팍스 117억원 등 다른 거래소들도 적지 않은 규모다. 펌뱅킹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도 은행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입원이다.
올해 가상자산 법인계좌 개설이 허용되면서 거래소 제휴를 둘러싼 은행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을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상반기에는 법집행기관·비영리기관 등이 매도 전용 실명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됐고, 하반기부터는 일부 기관투자자의 투자·재무 목적 매매 계좌도 허용될 예정이다.
그간 법인계좌는 개인보다 자금세탁 및 시장 과열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개설이 제한됐다. 그러나 제도 변화로 법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면서 은행들은 거래소 제휴 확대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 일반 법인의 계좌 개설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 당장 큰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이용자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만큼 법인 고객 확보는 향후 은행들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로 바꾸려면 은행이 먼저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상태”라며 “그러나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다자은행 제휴를 허용했을 때 얻는 뚜렷한 사회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해 이를 굳이 추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이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를 원한다면 단순히 수익을 이유로 허가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거래 수수료 인하 등 실질적 유인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