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세월호 참사가 11주기를 맞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떠난 아이들을 가슴에 품은 채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참사로 자식을 잃어보니까 너무 아파요. 내 자식을 떠나보낸 것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아이의 희생까지 헛되게 할 수 없잖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예요.”
고(故) 조은정양의 어머니 박정화(57)씨가 지난달 24일 기자와 만났다. 박씨는 4.16가족나눔봉사단(이하 4.16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로 구성된 4.16봉사단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재난 안전 교육 봉사를 다닌다.
박씨는 “우리는 지난 2019년도부터 재난 안전 전문가 과정을 밟았다. 시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재난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4.16봉사단은 재난 현장에 직접 가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들은 ‘경북 울진 산불(2022)’, ‘이태원 참사(2022)’,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2024)’ 등 여러 재난 참사 현장에 함께 했다.
박씨는 “봉사 초창기에는 우리도 참사 피해자인 만큼 우리의 아픔과 용기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참사 현장을 찾을수록 내 아픔은 뒤로 하고 오로지 지금 피해자들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어 박씨는 “참사 피해자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공유하며 그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달 26일 만난 고(故)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60)씨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단장이다. 최씨는 8년째 노란리본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노란리본은 세월호 피해 학생들의 엄마들이 배우로 참여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공공 안전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이야기들을 선보이고 있다.
최씨는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는 극을 올리며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전하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서 보람차다”고 전했다.

최씨는 가장 힘들었던 연습으로 노란리본의 4번째 작품인 ‘기억 여행’(2021)을 꼽았다. 기억 여행에는 참사 이후 8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이 걸어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극 중 최씨는 보상금, 특혜 등 세간의 오해에 휩싸여 세월호 유족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역을 맡았다. 최씨는 “대사 연습을 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당시 트라우마가 떠올라 많이 울고 헤맸다.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 가며 임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굉장히 쓰라리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사회를 바꾸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포기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기억이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막는 가장 큰 방어막이다. 못다 핀 아이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故) 이태민군의 어머니 문연옥(52)씨는 4.16공방의 공방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16공방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위안의 장이자 기억과 행동의 공간이다. 문씨를 포함한 세월호 피해 가족들은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으며 아이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서로의 슬픔을 달랬다.
그들은 공방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 매년 전시도 열고 있다. 문씨는 “작품을 통해 시민들이 진상규명의 필요성과 참사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고심해서 작품을 구상한다”고 전했다.
또 문씨는 “공방에서는 노란 리본 고리 등 기억 물품도 제작한다. 세월호 관련 행사에 나갈 때마다 물품을 나눠주며 시민들이 세월호와 함께 안전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태민이를 보낸 후부터 나는 아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떨려 하고 힘들어하지만, 아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참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가 안전한 줄로만 알았다. 아이가 떠나면서 현실을 알려준 것 같다. 남겨진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세월호 피해자들과 연대해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4.16 재단 박성현 나눔사업1팀 팀장은 “참사 피해자들은 개별적인 회복 외에도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며 “시민사회에서도 안전의 감시자 역할을 다하며 참사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피해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안산 마음건강센터 정해선 부센터장은 “11년의 세월이 지나도 피해자들은 참사일이나 희생자 생일 등 특정 기념일이 다가오면 참사 당시와 같은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겪는다. 이런 트라우마에도 그들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민들과의 교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피해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